[Post 코로나-원격의료] 꼬인 실타래, 풀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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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코로나-원격의료] 꼬인 실타래, 풀기 쉽지 않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5.20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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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두고 각계각층 이해관계 맞물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의료 추진을 중단하고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의료 추진을 중단하고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전 세계가 변하고 있다. 그중 가장 빠른 변화는 ‘비대면(Untact) 문화’로 정리된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더라도 인류와 영원히 공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있더라도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계절 감염병처럼 인류 곁에 머물 것으로 전문가는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감염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것은 생활 방역 수칙이다. 이 생활 수칙 중 첫 번째가 ‘거리 두기’에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간단한 방법인데 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가능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 모든 일상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뿐 아니라 직장과 사회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원격의료’를 두고 논쟁이 불붙고 있다.

정부는 시범사업까지 확대하면서 비대면 진료인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포스트(Post) 코로나19 시대’에 걸맞은 정책이라는 것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은 원격의료는 의료시스템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악재’가 될 것으로 판단, 강력하게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원격의료, 정권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원격의료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논란이 있었다. 그때마다 여러 갈등이 부상하면서 흐지부지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격의료 도입 논란은 조금 다른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지난 2월 중순 신천지 대구 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대유행이 지역사회로 확산되자 보건복지부는 2월 2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원격진료 시행 방안 등을 구체화한 ‘전화 상담·처방과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 방안’을 공개했다. 실제로 2월 24일부터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 따른 전화 상담과 처방을 허용했다.

이후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전화 상담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5월 16일까지 코로나19 관련 전화 상담·처방이 26만여 건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원격의료, 지금도 가능할까=세계보건기구(WHO)는 ‘의사와 의사’ ‘의사와 환자’를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질병과 부상 예방, 진단, 치료, 의료공급자들에 대한 교육 등을 원격의료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 따라 2002년 3월 30일 개정 의료법에 원격의료 조항을 신설했다. 문제는 이 조항에는 ‘의사와 의사’만 원격의료가 가능하고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는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에 한한다)은 제30조 제1항 본문의 규정에 불구하고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원격지의 의료인에 대하여 의료지식 또는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행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의사와 의사’ 간 원격의료만 허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권 때마다 도입 시도, 그때마다 무산=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의사와 의사’가 아닌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 도입을 시도했다. 모두 흐지부지됐는데 진보적 시민사회가 반대했고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했다. 무엇보다 많은 국민이 당시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는 이에 대해 “(그동안 원격의료 논쟁은)전자와 정보통신 업계 등의 재계(자본)와 집권 정치세력(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시민사회(노동계 포함)와 민주진보 성향의 야당, 대한의사협회는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구도가 최근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오래된 대립 구도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며 “원격의료를 반대해왔던 민주진보 정치세력 내부의 분화가 생겼고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비대면 진료’ ‘원격의료’ 뭐가 다르지=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한국형 뉴딜 선언 이후, 김연명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지난 13일 여당의 혁신포럼 강연에서 원격의료 제도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움직이자 정세균 국무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차례로 나서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제도적 지원에 나서겠으니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해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이 같은 정부 정책 흐름에 여당이 응수하는 과정에서 ‘원격의료’라는 말은 사라지고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상이 대표는 “최근 여당 지도부에 속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비대면 진료’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것이 ‘원격의료’와 다른 것처럼 이야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여당이 과거 야당일 때,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원격의료를 반대했던 사실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고 설명했다. 자신들이 반대했던 ‘원격의료’라는 용어 대신 ‘비대면 진료’라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 대표는 “일부 정치인들이 원격의료를 ‘비대면 진료’라고 부르고 서로 다른 것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에서 ‘영리병원’을 ‘투자 개방형 병원’이라고 바꿔 불렀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며 “용어를 다르게 사용해 논쟁을 피해 가는 잘못을 문재인 정부에서 반복해선 안 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설득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 ‘의사와 환자’ 원격의료 도입, 관련법 개정 나설까=‘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 관련 의료법 개정이 21대 국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15일 ‘대회원 서신’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다는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19’ 담론을 내세워 그동안 의료계가 반대해 온 원격의료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코로나19라는 현재진행형의 국가적 재난을 악용한 정부의 행위를 '사상 초유의 보건의료위기의 정략적 악용'으로 규정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회원들에게 전화 상담과 진료를 즉시 중단하라고 주문까지 했다.

최 회장은 “박근혜정권 당시 야당이었던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로서 그 한계가 명확해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고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 소지가 불명확하다는 의료계의 반대 관점에 전적으로 힘을 보탰다”고 민주당을 겨냥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비판도 나왔다. 최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원격의료는 ‘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 수단’으로 한정하겠다고 공약을 했다”며 “그런데 지금, 2014년 당시 박근혜 정권이 추진했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정책에 ‘포스트 코로나19’라는 상표 하나를 덧붙여 국민의 이목을 속이려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해법은 없나=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원격의료가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원격의료가 대면 진료를 점차 대체할 경우 결국 개원의들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셋째, 원격의료가 제도화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려 결국 동네 의원이 고사한다는 주장이다. 넷째, 원격의료로 장차 대면 진료 중심의 일차보건의료 체계가 무너진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상이 대표는 “원격의료를 시행하려면 의료계의 반대를 넘어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사회 통합적 방식으로 정치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며 이 접점을 찾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하나의 해법으로 ‘커뮤니티 케어’에만 적용되는 ‘원격의료’ 제도화를 제안했다. 이때 원격의료 제공자에서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은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원과 요양병원(일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소규모 병원 포함 검토)이 커뮤니티 케어 시대의 원격의료 제공자가 되고, 원격의료의 대상은 정부에서 정한 장기요양 대상자인 ‘거동 불편 노인’ 등을 포함한 커뮤니티 케어 대상자와 각종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국민만 해당하도록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격의료 도입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원격의료를 둘러싸고 각계각층의 의견도 다르고 다양하다.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 것인지가 관건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대표적 문화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있다. 20일 오전 대구시 중구 경북여고에서 코로나19로 개학이 80일 미뤄졌다가 이날 등교한 고3 학생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줄지어 교실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대표적 문화 코드는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20일 오전 대구시 중구 경북여고에서 코로나19로 개학이 80일 미뤄졌다가 이날 등교한 고3 학생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줄지어 교실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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