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다] 1시간 안에 세균 감염성 질환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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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품다] 1시간 안에 세균 감염성 질환 진단한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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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연구원 연구팀, 재료비 600원 들어간 수동진단기구 개발
일반 피젯 스피너 장난감(왼쪽)과 이를 응용한 진단용 스피너. 한손으로 중앙부위를 잡고 다른 손으로 스피너의 날개를 회전시켜 작동한다. [사진=IBS]
일반 피젯 스피너 장난감(왼쪽)과 이를 응용한 진단용 스피너. 한손으로 중앙부위를 잡고 다른 손으로 스피너의 날개를 회전시켜 작동한다. [사진=IBS]

전기 없이 수동으로 세균 감염성 질환을 1시간 내 진단하는 기구가 발명됐다. 특히 이 진단기구는 재료비로 고작 600원만 들이면 된다.

손가락으로 장난감을 돌리듯 간단히 세균감염을 진단할 수 있는 기구가 개발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첨단연성물질 연구단(단장 스티브 그래닉) 조윤경 그룹리더(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장난감 ‘피젯 스피너’를 닮은 수동진단 기구를 발명했다. 며칠 걸리던 감염성 질환 진단을 1시간 이내로 단축했다. 무엇보다 100% 진단 정확도를 보여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오지에서 항생제 오남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세균성 감염질환은 복통, 유산, 뇌졸중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감염성 질환 진단은 보통 하루 이상 걸리는 배양 검사가 필요하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큰 병원에서만 가능해 검사에 1~7일이 걸린다.

이 때문에 작은 의원에서는 증상만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맞지 않는 항생제를 사용하면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면서 점점 더 높은 단계의 항생제가 필요해진다. 1단계 항생제는 500원에 불과한데 4단계 항생제는 100만 원에 달한다. 끝내 항생제로 해결할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까지 출현할 수 있다.

진단시간 단축을 위해 과학자들은 ‘칩 위의 실험실(lab on a chip)’ 등을 내놓았다. ‘칩 위의 실험실’은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여러 처리 기술을 단일 회로에 집약해 놓은 장치를 말한다. 자동화와 높은 처리량이 특징이며, 매우 작은 양의 유체를 다룰 수 있다. 다만 이 장치에는 일반적으로 칩 내의 시료를 이동시키기 위한 복잡한 펌프나 회전장치 등 제어 장비가 필요해 개발도상국이나 오지에서 사용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적은 힘으로도 빠르게 오랫동안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fidget spinner)’에 주목했다. ‘피젯 스피너’는 베어링을 중심으로 본체를 돌리는 손바닥 크기의 장난감이다. 2017년 인기를 끈 바 있다. 한 번 돌리면 수 분까지 회전할 수 있을 만큼 마찰력이 적다. 이 장난감에 착안해 연구팀은 손으로 돌리는 미세유체칩을 구상했다.

구현을 위해 조윤경 교수가 2014년 개발한 ‘FAST(fluid-assisted separation technology, 원심력을 이용한 입자 분리용 디스크에서 필터 아래쪽에 마중물을 채워 작은 힘으로도 막힘 현상 없이 빠르게 입자를 분리할 수 있는 기술)’를 응용했다. 일반 미세유체칩은 시료를 거르는 필터 아래쪽에 공기가 있어 시료를 통과시키는 데 높은 압력이 필요하다. 반면 필터 아래쪽에 물을 채우는 FAST 기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압력으로 시료를 통과시킬 수 있어 손힘으로도 충분하다.

연구팀은 회전으로 병원균을 농축한 다음, 세균 분석과 항생제 내성 테스트를 차례로 수행하도록 기구를 설계했다. 진단용 스피너에 소변 1ml를 넣고 1~2회 돌리면 필터 위에 병원균이 100배 이상 농축된다. 이 필터 위에 시약을 넣고 기다리면 살아있는 세균의 농도를 색깔에 따라 육안으로도 판별할 수 있다. 추가로 세균의 종류도 알아낼 수 있다.

세균 검출 후에는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진단용 스피너에 항생제와 섞은 소변을 넣고 농축시킨 뒤 세균이 살아 있는지를 시약 반응으로 확인한다. 이 과정은 농축에 5분, 반응에 각각 45분이 걸려 2시간 이내에 감염과 내성 여부를 모두 진단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인도 티루치라팔리 시립 병원에서 자원자 39명을 대상으로 병원의 배양 검사와 진단 스피너 검사를 각각 진행해 세균성 질환을 진단했다. 실험결과 진단 스피너로 검사 결과를 1시간 이내에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배양에 실패한 경우까지 정확히 진단해 냈다. 이에 따라 현지의 일반 처방으로는 59%에 달했을 항생제 오남용 비율을 0%로 줄일 수 있음을 보였다.

조윤경 그룹리더는 “이번 연구는 미세유체칩 내 유체 흐름에 대한 기초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미세유체칩 구동법을 개발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항생제 내성검사는 고난도 기술이고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는데 이번 연구로 빠르고 정확한 세균 검출이 가능해져 오지에서 의료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제1 저자인 아이작 마이클 연구위원은 “진단용 스피너는 개당 600원으로 매우 저렴하고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600원은 상용화됐을 때 이윤이나 여러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 재료비라고 전제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5월 19일 자(논문명: A fidget spinner for the point-of-care diagnosis of urinary-tract infection)에 실렸다.

정 가운데 원이 회전축이다. 회전축 양 옆으로 2개의 샘플을 실험할 수 있다. 먼저 소변 샘플을 넣고 스피너를 회전시키면 필터(양 옆 작은 원)에 박테리아가 걸러진다. 이후 세균 검출 시약을 주입해 반응시켜 눈으로 살아있는 세균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세균 검출 뒤에 항생제를 섞은 소변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해 항생제 내성검사를 진행한다. [사진=IBS]
정 가운데 원이 회전축이다. 회전축 양 옆으로 2개의 샘플을 실험할 수 있다. 먼저 소변 샘플을 넣고 스피너를 회전시키면 필터(양 옆 작은 원)에 박테리아가 걸러진다. 이후 세균 검출 시약을 주입해 반응시켜 눈으로 살아있는 세균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세균 검출 뒤에 항생제를 섞은 소변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해 항생제 내성검사를 진행한다. [사진=IBS]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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