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 채제공, 실학과 함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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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채제공, 실학과 함께하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05.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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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 공동기획전 열어
▲ 채제공 초상 시복본, 1792년,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보물 제1477-1호 일괄 지정 (사진 = 수원화성박물관 제공)
▲ 채제공 초상 시복본, 1792년,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보물 제1477-1호 일괄 지정 (사진 = 수원화성박물관 제공)

 

실학박물관(관장 김태희)과 수원화성박물관(관장 한동민)이 조선 정조 대 명재상 채제공과 실학을 주제로 공동기획전을 연다.

전시는 5월 19일부터 8월 23일까지 실학박물관에서 시작돼, 9월 3일부터 10월 25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마무리된다.

이번 저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됐다.

1부는 채제공의 출신 배경과 정조 대의 재상으로서 행적이 중심이다.

서울경기지역 명가의 후예로 그가 18세기 남인세력의 영수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전시로 풀었다.

정조 12년인 1788년, 임금이 친히 어필로 우의정에 임명하는 '비망기'를 비롯해 재상으로 재임하며 올렸던 상소들을 통해 채제공의 정치적 생애를 조망했다.

훌륭한 군주에게 훌륭한 신하가 있듯, 18세기 문화 중흥을 이끈 정조를 보필한 명재상 채제공의 위상을 드러내고자 했다.

2부는 실학과 채제공의 학문적 관련성을 주목했다.

채제공은 국가개혁을 위해 반계 유형원의 학문을 계승했고, 성호 이익의 학문을 후배 학자들에게 권면했다.

또한 체재공은 열린 시각으로 서양의 학문을 실용적 차원에서 활용을 생각했다.

그가 격려했던 실학자 정약용의 '죽란시사' 관련 유물과 이가환의 '금대전책'에서 채제공과 실학자와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정약용 등은 채제공이 죽은 후 직접 '번암고'라는 문집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다.

3부는 시대 변화를 읽은 뛰어난 관료로서 채제공의 활동을 다뤘다.

그의 대표적인 공적은 크게 두 가지다.

'신해통공(辛亥通共)'은 육의전 등이 점유한 특권적 상업 독점을 폐지하는 조치였다.

채제공은 이미 몇 차례 발의됐으나 실패를 거듭했던 통공책을 실현했고, 영세소민들의 삶을 보호했다.

서울에서 상업 활성화에 기여한 신해통공의 단행은 영상작품 '신해통공-상생의 씨앗'으로 연출됐다.

또한 채제공이 처음부터 총괄했던 신도시 수원 화성의 건설은 정조 시대 최대 국책사업이었다.

여러 실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 진행한 이 사업의 전모를 이번 전시에서 조망했다.

12폭의 '수원화성도' 병풍을 통해 상업물류의 중심으로 부상했던 조선 최고의 신도시를 관람객들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4부는 '채제공, 그림과 기록으로 남다'라는 제목의 섹션으로 보물로 지정된 채제공의 초상과 그가 죽은 후 곡절 끝에 이뤄진 '번암문집'의 간행 과정을 전시로 연출했다.

특히 채제공의 행적을 기록한 한글필사본 '번상행록'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되는 유물이다.

이처럼 조선후기 개혁의 실천에서 채제공은 위상은 뚜렷했다. 

그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했고, 소외받던 영세민과 지방민을 포용했으며 변화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를 정책으로 추진했다. 

그로 인해 재야 실학의 학문적 성과는 실현의 기회를 얻었다. 

오늘날 박물관과 학계는 실학적 견지에서 실질적 성과를 이룬 역사적 인물을 ‘관인 학자’로 주목하고 있다. 

지나친 명분론과 헛된 이념의 시대를 반성하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시대가 그런 인물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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