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드러난 건설현장 하도급의 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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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드러난 건설현장 하도급의 패악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05.05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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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돼도 '처벌 대상' 선정에는 논란 계속될 듯
▲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는 사고 현장 (사진 = 연합뉴스 제공)
▲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는 사고 현장 (사진 = 연합뉴스 제공)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도 언급한 것처럼 이와 같은 사고는 매우 후진국형 사고인데, 왜냐하면 유사한 대형 사고가 그동안 반복적으로 발생했으며,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했음에도 별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화재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하 2층에서 우레탄 작업과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중 발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던 것은 발화 직후 폭발적인 연소와 연기 발생으로 미처 희생자들이 탈출구를 찾지 못했고, 미완공 건물이기 때문에 스프링쿨러 등 소방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 말라는 걸 왜 자꾸 하다가 죽을까?

이번 사고를 비롯해 유사한 화재 사고를 두고 특히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으로 된 샌드위치 패널 단열재다.

이것은 유리섬유 단열재보다 값이 싸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한다.

소방당국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물류창고를 '화약고'라고 표현하며 화재 발생 시 진화가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용접 등의 불꽃작업이 발화의 원인일 경우도 배제할 수 없기에 산업안전보건법 상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여부도 관건이다.

통풍이나 환기가 충분하지 않고 가연물이 있는 건축물 내부에서 불꽃작업을 할 경우 소화기구를 비치하고 불티 비산방지덮개나 용접방화포 등 불티가 튀는 것을 막는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전에 일어나 대형 물류창고 화재는 물론, 비슷한 유형의 화재가 매년 1000건 이상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이 반복되는 사고는 단지 현장 작업자들의 안전불감증 때문일까?

어린아이도 그만큼 가르쳐줬으면 폭발하기 쉬운 가연성 물질 근처에서 용접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왜 거듭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걸까?

이번 이천 사고일은 4월 29일, 연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장이나 물류창고 셧다운 공사는 통상 연휴기간을 이용해서 가동을 멈추고 라인증설이나 개조공사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물류창고의 경우,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경우를 감안하면, 주말 이틀은 공사에 촉박하고 연휴기간을 이용해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공사는 보통 사전 준비기간에, 연휴 동안을 포함한 일주일 가량은 본공사 기간, 그리고 공사 후 유지보수 기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본공사 기간이다.

짧은 공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작업을 서두르게 되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도 부족하다.

여기저기서 인력을 불러다 쓰게 되고, 공사 현장은 물론, 제조업 현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원하청 문제가 2중 3중으로 꼬인다.

고정인력이 아니다보니 비숙련자들도 많고 인력관리가 전혀 안 된다고 보면 좋다는 게 업계 현실이다.

안 그래도 건설 불경기인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로 물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경쟁은 과열되고 공사 현장의 적정가격은 바닥을 모르게 무시된다.

공사를 발주한 기업은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도 하청이나 도급업체에 떠넘기는 구조의 계약서를 쓰고 있으니, 다소 무리한 단가 후려치기나 공기 단축이 뭐가 문제겠냐는 심사다.

또 몇번 공사를 해 보니까 무리한 일정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나오니까, 점점 더 단가는 내려가고 일정은 빠듯해지는 구조다.

앞서 가연성 물질 옆에서 용접작업을 하는 빤한 아슬아슬함에 대해 언급했는데, 소규모 하청, 도급 공사업체들이야말로 사업 영위를 외줄타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업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천 물류창고 공사를 함께 진행한다.

단기간에 한다.

용접, 도장, 전기, 비계 작업 등을 다 함께(?) 한다.

공사 현장에 두게 돼 있는 안전관리자가 혼재 작업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별 파워가 없는 현실이다.

▲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소방당국 (사진 = 연합뉴스 제공)
▲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소방당국 (사진 = 연합뉴스 제공)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부각, 그런데 누구를 처벌?

20대 국회에서 지난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21대 국회가 사상 초유의 공룡여당이 탄생한 만큼, 이와 같은 법 제정은 다시 시도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특히 여당의 환노위 위원들이 3선 이상 중진급에 들어섰고, 그밖에도 노동계 네트워크가 충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3선의 한정애 의원의 경우, 산업안전보건공단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 및 경영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가장 핵심이다.

법정 최저형을 3년형으로, 벌금 상한은 5억원으로 높인 것인데, 이 정도 수위도 논란의 거리였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최저형이 없고 벌금 상한은 1억원이었다.

개인이 아니라 법인에는 벌금 상한을 10억원으로 높였다.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한 '구의역 김군 사고'와 관련해 기소된 은성PSD는 작년 6월 항소심에서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솜방망이 처벌조차 직접적 책임이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기소된 존 리 옥시 전 대표가 무죄선고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6년 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형사재판 건수는 1심 기준 모두 5109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8건으로 0.5%에 불과했다.

3414건이 벌금형이었고, 집행유예는 582건, 선고유예는 194건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지난 2007년 영국이 도입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과 흡사하다.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자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본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사망재해가 발생하면 기업 법인 뿐만 아니라, 정부조직, 지역경찰, 노동조합, 사용자협의회까지 과실치사 및 살인행위의 주체로 본다는 점이다.

앞서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도 관리감독 및 인허가 권한을 지닌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묻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제조업, 건설업 현장에서는 책임을 다단계로 내리전가하는 구조가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이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도 제일 먼저 불거진 것은 '책임론'임을 주목해야 한다.

발주사인 한익스프레스는 5월 1일 유족들과 만나 꺼낸 말이 "시공사에 감리와 건설관리 등 사업관리에 대한 모든 부분을 위탁했다"는 것이었다.

시공사인 건우가 형사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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