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과학과 정치가 만나는 ‘그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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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과학과 정치가 만나는 ‘그 지점’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3.23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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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파우치 소장(오른쪽 끝)이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듣고 있다. [사진=사이언스/Al Drago/Bloomberg via Getty Images]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앤서니 파우치 소장(오른쪽 끝)이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다. [사진=사이언스/Al Drago/Bloomberg via Getty Images]

코로나19(COVID-19)는 정치와 과학이 만나는 그 지점에 있다. 과학보다 정치가 앞서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정치가 뒤처져서도 안 된다. 정책적 결정이 늦어지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형국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19를 두고 과학과 정치는 '미묘한 관계'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최근 미국과 유럽 지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배경에 과학적 사실을 애써 무시한 정치적 결과물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코로나19는 신종 감염병이다. ‘있는 그대로’의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해결책 찾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미국 상황을 보면 정치와 과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늠케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의 ‘미묘한 관계’에 관심이 쏠린다. 결론적으로 ‘럭비공’ 같은 트럼프의 좌충우돌을 파우치 소장이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최근 과학전문 매체 사이언스 지는 눈코 뜰 새 없는 파우치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질문은 “모든 사람이 (당신이 해고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한다”였다. 이에 대해 파우치는 “조금 피곤한 것 빼고는 괜찮다”며 “(웃으며) 코로나19에 감염되지도 않은 것 같고 당분간 해고당하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로부터)해고당하지 않으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파우치는 “트럼프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일단은 듣는다”며 “분명 트럼프의 길이 있고 그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적 문제에 있어서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로즈가든에서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할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어야 했다는 지적에 파우치는 “전담반에서 나는 늘 그렇게 말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항상 강조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명칭에 대해서도 트럼프와 파우치는 견해를 달리한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코로나19에 대해 ‘중국 바이러스(China virus or Chinese virus)’라고 표현해 에둘러 이번 사태의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려 애썼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특정 국가나 지역 이름이 붙은 감염병 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코로나19 공식 명칭은 ‘COVID-19’이다. 파우치 소장은 “나는 ‘중국 바이러스’라고 말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트럼프와 파우치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이뿐 아니다. 트럼프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을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클로로퀸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 세계 각국은 ‘약물 재창출(다른 질병 치료제를 코로나19에 적용하는 것)’ 연구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가 언급한 클로로퀸도 그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 파우치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파우치는 “트럼프의 말은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한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해고하고 비난했던 트럼프 밑에서 파우치 소장이 잘 버텨낼 수 있을지 미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정책적 판단을 할 때 과학자와 전문가 의견을 잘 경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우치 소장은 “어떤 일에 서로 동의하지 않을 때도 (트럼프는) 듣는다(Even though we disagree on some things, he listens. He goes his own way. He has his own style. But on substantive issues, he does listen to what I say)”고 말했다.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와 관련된 말은 무척 정제되고 과학적 판단을 거친 뒤 나와야 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사태 해결은커녕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우치 소장의 말처럼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은 전문가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신종 감염병은 특히 그렇다. 잘 알려지지 않을뿐더러 신종 감염병에 대해 그 어떤 연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 의견과 판단은 이런 측면에서 무엇보다 핵심 역할을 한다. 이를 종합하고 정제한 뒤 발표해야 전문가는 물론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다.

코로나19보다 오히려 정보 감염증(인포데믹)이 더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 무차별로 떠다니고 있다. 친한 사람으로부터의 들은 소문도 거짓된 정보가 많다.

소금물로 소독한다거나 메탄올로 소독하다 중독사고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과학적,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이다. 하물며 세계적 지도자가 ‘정보 감염증’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돼서는 안 된다.

과학은 신종 감염병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관찰한다. 그것을 통해 방어할 대책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치는 ‘있는 그대로’를 넘어 과대포장 한다. 정치가 과학을 무시하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이유이다. 정치가 과학보다 앞선 판단을 하면 코로나19 종식은커녕 대혼란만 가져올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백악관이 코로나19 팬데믹의 구체적 사실을 들을 수 있도록 계속 푸시(push)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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