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다] 암흑물질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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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품다] 암흑물질을 찾아라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3.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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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팀, 액시온 존재…이론적 영역에서 탐색 시작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헤어(hairs)'라고 부르는 암흑 물질 필라멘트. '헤어'는 암흑 물질 입자가 행성을 통과할 때 만들어진다. [사진=NASA]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헤어(hairs)'라고 부르는 암흑물질 필라멘트. '헤어'는 암흑물질 입자가 행성을 통과할 때 만들어진다. [사진=NASA]

우리가 아는 우주는 약 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구성돼 있다. 암흑물질은 말 그대로 ‘DARK’ 해서 발견이 쉽지 않다.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보편적 단어는 ‘중력’이다. 중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태양계에서 태양과 행성 사이 관계도 중력으로 설명된다.

태양에 가까울수록 행성의 회전속도가 빠르다. 당연히 멀어질수록 회전속도는 느리다. 태양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수성은 매우 빠르게 태양을 공전한다. 한 번 공전하는 데 88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구는 당연히 365일이다. 해왕성은 무려 태양을 한번 도는데 6만152일(약 164.8년)이 필요하다. 이는 태양 중력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회전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흑물질, 우주를 채우다=베라 쿠퍼 루빈 (Vera Cooper Rubin) 미국 천문학자는 은하의 회전운동 연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루빈은 은하의 중앙팽대부(별이 밀집한 부분)와 그 주변의 원반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중앙팽대부(중력이 강한 곳)에서 멀어질수록 원반에 있는 별의 회전속도는 느려지는 게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질량 대부분이 중앙팽대부에 모여있으니 이 중심에 가까우면(마치 태양계의 수성처럼) 회전속도는 빠르고, 멀어지면(마치 태양계의 해왕성처럼) 느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루빈의 연구결과 이 상식은 깨져버렸다. 중앙팽대부에서 멀어질수록 회전속도가 느려져야 하는데 모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별 이외의 무언가가 어두운 공간을 채우고 있어야 가능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데 중력을 가지고 있는 물질, 이 어두운 영역을 ‘헤일로(halo)’라고 부른다. 이 헤일로 안을 채운 정체불명의 물질을 암흑물질로 여기고 있다.

우주 공간을 가득채우고 있는 이 암흑물질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 우주과학 연구의 핵심이 되고 있다.

◆국내 연구팀,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 신호 탐색=국내 연구팀이 이 같은 암흑물질을 규명하기 위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액시온 및 극한 상호작용 연구단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현대물리학의 난제를 풀어낼 액시온 신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액시온(Axion)은 암흑물질 후보 중 하나이다. 이론적으로 액시온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영역에 도달한 것으로 미국 워싱턴대, 예일대에 이어 전 세계 3번째다.

액시온은 강한 자기장과 만나 빛(광자)으로 변한다. 이를 단서로 1989년부터 전 세계에서 액시온을 찾아 실험을 진행해 왔다. 과학자들은 액시온이 존재할 수 있는 질량 범위와 광자로 변환됐을 때 신호 크기 범위를 이론적으로 추정하고 이를 ‘QCD(양자색소역학) 액시온밴드’라고 이름 지었다. 액시온이 존재할 경우 이 영역 내에서 신호가 발견된다는 뜻이다.

극저온 냉동기 내부 실험장치.[사진=IBS]
극저온 냉동기 내부 실험장치.[사진=IBS]

QCD 액시온밴드가 포함하는 신호 크기는 형광등보다 무려 1억경 배나 작은 수준에 불과하다. 검출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수준에 도달한 후부터 QCD 액시온밴드에 속하는 신호를 검출할 수 있어 특정 지점에 액시온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액시온을 발견하려면 탐지하는 질량과 신호 세기를 바꿔가며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QCD 액시온밴드 영역의 신호를 검출할 만한 기술을 갖추고 탐색을 진행하고 있는 실험그룹은 전 세계 8곳 중 미국 워싱턴대와 예일대 2곳뿐이다. 워싱턴대는 액시온 질량이 1.9~3.53μeV(마이크로일렉트론볼트, 1μeV는 약 1.78×10의-42승 kg)인 경우, 예일대는 액시온 질량이 23.15~24μeV인 경우의 신호를 탐색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은 6.62~6.82μeV 질량 범위에서 액시온을 탐색했다. 해당 질량에서는 최초로 검출 범위가 QCD 액시온 밴드 영역에 도달하고 탐색한 영역에 액시온이 없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작은 신호 검출을 위해 강한 자기장 하에서 잡음을 최소화한 실험장치를 구축했다. 연구팀은 지구 자기장보다 16만 배 강한 8테슬라(자기장의 단위. 1T는 지구 자기장의 2만 배) 자기장을 내는 원통형 초전도 자석을 마련하고, 자석 중심에 안테나가 삽입된 금속 원통을 넣었다. 액시온은 자기장과 만나 광자(전자기파)로 변한다.

발생한 광자가 원통의 공진주파수와 일치하면 안테나로 이 신호를 읽을 수 있다. 각 과정은 증폭과 열로 발생하는 잡음을 줄이고 초전도를 유지하기 위해 영하 273도 냉동기 안에서 진행됐다. 연구팀은 2년에 걸쳐 각 과정에서 잡음을 극도로 줄이고 테스트를 거친 뒤 3달 동안 자료를 수집해 결과를 얻었다.

액시온이 발견되면 현대물리학의 난제를 풀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물질로 이뤄진 까닭은, 태초에 빅뱅이 물질을 반물질보다 훨씬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물질과 물질이 만나 소멸한 뒤 물질만 남았는데 지구도 물질-반물질 간 비대칭 덕에 존재하는 셈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비대칭이 우리 세계와 ‘거울 세계’의 물리법칙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추측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전하(Charge)와 좌우(Parity)가 바뀐 ‘거울 세계’가 이 세계와 같은 물리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CP 대칭성’이다. 이 대칭이 깨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물질-반물질 수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액시온’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고안한 입자로 물질-반물질 간 비대칭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우주를 채우는 미지의 물질인 암흑물질일 가능성도 있다.

제 1 저자인 IBS 이수형 연구기술위원은 “워싱턴대가 30년 이상, 예일대가 10년 이상 연구해 온 데 비해 이번 프로젝트는 2017년에 시작했고 빠르게 실험 수준을 따라잡았다”라며 “지금보다 두 배 넓은 질량 범위를 6개월 이내에 탐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미국 물리학회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 3월 14일 자 온라인(논문명: Axion Dark Matter Search around 6.7μeV)에 실렸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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