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은밀한 감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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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은밀한 감염자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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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현미경으로 포착된 코로나19바이러스(노란색)가 보라색 세포표면에 달라붙어 있다. [사진=NIH]
전자현미경으로 포착된 코로나19바이러스(노란색)가 보라색 세포표면에 달라붙어 있다. [사진=NIH]

○…은밀한 감염자=“야! 너, 자가격리해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소리. 아무 이상 없어. 어제 공항에서 발열 체크하고 건강설문지까지 작성했는데 무사히 통과했어. 그러니 안심해! 나, 건강하다구.”

대학 친구들이 모였다. A 양이 최근 유럽을 여행한 뒤 선물을 잔뜩 챙겨 돌아왔다. 환영회 겸 조촐한 저녁 모임이었다. 코로나19(COVID-19) 감염을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A 양은 발열 체크, 건강설문지 등을 이야기하면서 안심시켰다.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은 지났다.

며칠 뒤. B 양에게 고열이 나타났다.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다. 근처 보건소를 찾았다. 섭씨 39도에 가까웠다. 보건소는 B 양의 검체를 채취했고 검진 결과 코로나19 양성으로 확진됐다. 이후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당연히 며칠 전 친구들과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 검사과정에서 A 양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A 양은 무증상이었다.

의료진은 이 같은 역학조사를 내놓으면서 “코로나19에 무증상이었던 A 양은 유럽 여행을 통해 감염됐고 친구 모임에서 B 양을 감염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B 양은 친구와 모임 이후 줄곧 집에 있었고 A 양과 모임 이후 발열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위 사례는 하나의 가상 사례이다. 이처럼 무증상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을까. 아직 이 부분은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무증상자가 무조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부분에 이르면 좀더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판단이다. 다만 최근 무증상자  전파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코로나19 무증상자와 경미한 확진자에 대해 전문가 관심이 매우 높다. 최근까지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10명 중 4~5명(40~50%)은 무증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해 가장 위협적 요소는 증상이 경미하거나 무증상자에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 몸에 이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 활동을 그대로 이어간다. 무증상임에도 최근 연구를 종합해 보면 전염력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코로나19 방역에 언제든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무증상, 경미한 감염자 비율 중요하다”=과학전문 매체인 네이처는 20일(현지 시각) 코로나19에 감염됐더라도 증상이 경미하거나 무증상 감염자인 이른바 ‘은밀한 감염자’가 전체 감염자의 60%에 이를 수도 있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은밀한 감염자’는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다. 발열 체크 등에서도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는 가지고 있다. 미네소타 감염병 연구와 정책 센터(Minnesota’s Center for Infectious Diseases Research and Policy)의 마이클 오스터홀름(Michael Osterholm) 국장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무증상 또는 경미한 이들의 비율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정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미국 연구팀이 ‘은밀한 감염자’ 파악을 위해 중국 우한보건위원회에 보고된 실험실 확진 사례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받아 모델링을 시도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우 탕춘(Wu Tangchun) 중국 우한 화중과기대 교수는 “우리 연구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우한에서 약 59%가 증상이 경미하거나 무증상자로 파악됐다”며 “이들은 자신이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고 일상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과 접촉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중국 우한에서 급격히 바이러스가 확산됐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분산조처만이 코로나19 강력한 방역이다”=또 다른 연구도 있다. 지난 2월 초 중국 우한에서 565명의 일본인이 대피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팀이 바이러스와 증상을 반복적으로 테스트하고 모니터링했다. 지난 13일 국제감염질환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에 관련 논문이 발표됐는데 565명 중 13명이 감염됐고 이 중 4명(약 31%)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무증상자였다.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 선박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선박은 격리됐고 3711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반복적으로 테스트를 거쳤다. 모니터링이 시작됐다. 지난 12일 발표된 초웰(Gerardo Chowell) 조지아주립대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감염된 700명 확진자 중 약 18%가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사례와 달리 무증상자가 매우 적다.

이에 대해 초웰 교수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는 노인이 많이 타고 있었다”며 “노인의 경우 증상이 바로 나타나거나 심하게 앓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의 무증상자 비율이 낮은 것은 이런 특수 상황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초웰 교수는 “이런 점을 감안하고 여러 연구를 종합해 봤을 때 일반인의 무증상 감염률은 일본팀이 보고한 31%에 가까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경미한 환자까지 보태면 그 비율은 약 40~50% 차지할 것으로 초웰 교수는 예상했다.

문제는 경증이거나 무증상자들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느냐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사태 초기부터 무증상자 전파력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지난 8일 독일의 한 연구팀이 증상이 경미한 코로나19 감염자를 대상으로 질병 초기 면봉으로 검체를 조사했더니 매우 높은 수준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나오는 침방울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특히 경미하거나 무증상자에 대한 부분은 어린이에 이르면 심각한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중국에서 700명 이상의 감염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56%가 경증이거나 증상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증상자인 어린이가 전파력이 있다면 가족을 감염시키고 가족이 지역사회를 감염시키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경증과 무증상 사례를 억제하기 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증과 무증상자를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이러스 검사일 수밖에 없다. 확진자를 빨리 파악하고, 이들과 접촉한 이들을 빠르게 격리하고, 검사를 통해 확진 여부를 신속하게 밝혀내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21일 현재 32만7509건에 이르는 검사를 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검사 건수이다.

초웰 교수는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지금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강력한 사회적 분산 조치”라고 잘라 말했다. 경미하거나 무증상자에 대한 긴급 조치가 없으면 또 다시 코로나19는 창궐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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