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늑장과 뒷북의 달인 ‘WHO’…‘팬데믹’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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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늑장과 뒷북의 달인 ‘WHO’…‘팬데믹’ 자초했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3.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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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늑장 대처와 뒷북 행정의 모습을 또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사진=WHO]
WHO가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늑장 대처와 뒷북 행정의 모습을 또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사진=WHO]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아무리 힘없는 국제기구라는 평가가 있음에도 이처럼 무능한 국제기구는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현지시각) 코로나19(COVID-19)에 대해 ‘팬데믹(Pandemic, 대유행)’을 선언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에 대해 계속 평가해 왔으며 최근 들어 전파 속도와 그 심각성에 큰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이에 따라 WHO는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WHO가 11일 팬데믹을 선언했는데 전 세계에 놀라고 충격적이란 반응은 없었다. 이미 ‘팬데믹’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WHO 선언은 늑장 대처이자 뒷북 행정의 전형으로 평가절하되고 말았다. WHO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 그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세계보건을 책임지는 국제기구인데 특정 국가와 특정 이슈에만 매몰된 채 전체 그림을 전혀 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먼저 코로나19를 두고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 선언에서 엇박자가 나왔다. 가장 큰 실책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지난해 12월 말 첫 확진자가 확인됐다. 이후 중국에서 삽시간에 코로나19가 퍼졌다. WHO는 지난 1월 23일 긴급위원회를 열고 ‘PHEIC’ 선언을 논의했다. 긴급위원회에서는 PHEIC 선언을 두고 50대 50으로 의견이 맞섰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PHEIC’ 선언 유보를 택했다. 당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아직 PHEIC를 선언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중국이 잘 대처할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중국이 잘 대처하고 있다는 그의 진단은 일주일 만에 터무니없는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더 확산됐다. 수천 명이 감염되고 수백 명이 사망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중국 우한뿐 아니라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전 세계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을 넘기 시작했다. WHO는 1월 30일 긴급위원회를 재소집했다. 뒤늦게 ‘PHEIC’가 선언했다. 여기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의 두 번째 실책이 나왔다. PHEIC를 선언했음에도 중국과 교역, 여행 차단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PHEIC를 선포하면 감염병 창궐지역에 대한 여행과 교역을 차단하는 게 상식이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당시에도 “PHEIC를 선언하는데 중국에 대한 교역과 여행 차단은 권고하지 않는다”며 “중국이 COVID-19에 대처를 잘 하고 있고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WHO가 중국 우한에 대한 교역과 여행 차단 권고를 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 각국은 중국인 입국 금지에 대한 명분을 잃고 말았다.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를 한 나라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나라도 많았다. WHO가 감염병 차단을 위해 입국 금지시킬 수 있는 명분을 빼앗아 버린 셈이다. 그런 사이 코로나19는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중국은 감염자가 8만 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3000명에 이르면서 정체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중국 이외 지역에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신천지 대유행’이라는 특수 코어(중심) 집단으로 현재 감염자가 8000명에 이르고 있다. 섬유산업 등으로 중국과 교류가 잦은 이탈리아는 하루에만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서는 등 현재 감염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도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 8000명 확진자를 돌파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미국도 1000명에 가까운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이외 지역에서 3월초부터 급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는데도 WHO는 ‘팬데믹’을 선언하는데 주저했다. 전 세계 각국과 외신 등은 이미 ‘팬데믹’이라고 받아들였음에도. 마지못해 11일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꼴이 되고 말았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11일 ‘팬데믹’을 선언하면서도 ‘최악을 가정한 대응’이 아닌 안일한 인식을 여전히 드러냈다. 그는 “지금까지 114개국에서 11만8000명이 감염됐는데 90% 감염자는 특정한 네 나라(중국과 한국 등)에서 발생했다”며 “81개국에서는 아직 확진자가 없고 57개국에서는 확진자가 10명 이하”라고 말했다. 최근 ‘전 국민 이동제한’까지 내리며 준전시 상태에 들어간 이탈리아 현황, 이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조차 없었다. 다만 “이란, 이탈리아, 대한민국에서 바이러스를 늦추고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취한 조치에 감사한다”는 의례적 언급만 있었을 뿐이다.

코로나19에 있어 WHO는 여러 번 ‘호미’로 차단할 기회를 놓쳤다. 늑장 대처는 물론이고 뒷북 행정으로 전 세계에 대혼란만 불러왔다. 코로나19 전파력은 매우 강하고 기저질환과 고연령층에는 치명적이다.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됐다.

WHO가 11일 내놓은 ‘상황보고서-51(Situation report-51)’을 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감염자는 11만8326명이다. 사망자는 429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명률이 3.6%에 이른다. 11만 명이 감염되고 4300여 명이 죽어가는 동안 WHO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아직도 “특정한 나라에서만 급증하고 있다” “57개국에서는 확진자가 없다” “중국이 잘 대처했다” “다른 나라들도 잘 대처하고 있다”는 말만 늘어놓는다면 WHO의 존립 근거는 없을 것이다.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신종 감염병 대처에서 가장 큰 원칙은 ‘최악의 상황을 두고 과잉 대처해야 한다’는 말은 시민에게 공포감을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인을 안심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WHO만 모르는 것일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하는 WHO, 가래로도 막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존재 이유가 궁금하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전 세계에 WHO의 존재이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던지게 하고 있다.[사진=WHO]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전 세계에 WHO의 존재이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던지게 하고 있다.[사진=WHO]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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