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품다] 여·야 불문 ‘벼슬아치’ 근성…기후위기 정책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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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품다] 여·야 불문 ‘벼슬아치’ 근성…기후위기 정책 ‘나 몰라라’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3.1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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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부 정책 ‘앵무새’ 반복 vs 통합당, 원자력발전 집착 여전
지난해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란 이름으로 기후비상사태 선언, 탄소배출 제로 정책 등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지난해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란 이름으로 기후비상사태 선언, 탄소배출 제로 정책 등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난 벼슬아치를 믿지 않소.”

영화 ‘남한산성’에 나오는 말이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원병을 요청하는 국왕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도원수가 이끄는 병영을 찾는다. 국왕의 친서가 분명함을 확인했음에도 도원수 등은 지금 나갔다가는 자신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며 서날쇠가 가지고 온 국왕 친서를 무시하기로 한다. 받지 않았다고 하자는 것. 도원수 측은 서날쇠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왕의 친서도, 목숨 걸고 찾아온 백성인 서날쇠도 인정하지 않는 ‘벼슬아치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백성을 늘 입에 달고 사는 최고 권력자도,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선언한 장군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백성’보다 ‘권력’을 좇는 속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오는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코로나19(COVID-19)로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총선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각 정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는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린피스는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정의당 등에 ‘기후위기 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결과적으로 이들 정치인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은 ‘벼슬아치 근성’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새로울 것 전혀 없는 문재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만 되풀이하는 ‘앵무새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평가받았다. 제1야당인 통합당은 여전히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린피스 측은 “민주당, 통합당 등 주요 정당이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기후위기 관련 공약을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지율 5% 안팎의 정의당만이 진일보한 기후위기 대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그린피스는 지난달 13~20일 민주당, 통합당, 정의당(여론조사기관 갤럽 조사 결과 지지율 5% 이상)의 당 대표실과 정책위원회를 대상으로 기후위기 정책 관련해 설문 조사했다. 그린피스는 각 정당에 2050년 이전에 넷제로(net-zero, 온실가스 배출 제로) 실현,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세 도입 등 기후위기 대응책에 대한 질문 11개를 물었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기후비상사태 선언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여부 등 주요 질문에 확답을 회피하거나 유보했다. 민주당은 기존 정부 정책을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통합당은 원자력발전에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정의당은 기후위기 관련 주요 정책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는데 실행방안 등 구체성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당론으로 채택할지 묻는 항목에 민주당은 관련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며 유보 뜻을 보였다. 통합당은 비상사태 선언에 공감하는데 당론으로 채택할지는 확답하지 않았다. ‘2050년 온실가스 배출제로’에 관해서는 민주당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확답을 피했고 통합당은 목표 수치를 정해 참여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기후위기 정책을 외면하는 행태는 기독민주연합, 사회민주당, 녹색당 등 주요 정당들이 기후위기 대책을 주도하는 유럽연합(EU)과 크게 비교된다. 영국에서는 집권 보수당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넷제로(net-zero) 법’을 제정했다. 영국 보수당은 또 내연기관 차량 판매금지 시점을 204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도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그린 뉴딜을 유력한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인정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그린 뉴딜 공약을 내세우며 ▲기후위기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 ▲100% 청정·재생에너지 경제 기반 구축 ▲2050년 이전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등을 약속하고 있다. 예일대와 조지 메이슨대가 2018년 미국 유권자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64%가 그린뉴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전 세계적으로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침체에 빠진 경제를 재도약시키기 위한 방안을 동시에 모색하고 있다”며 “한국 양대 정당은 지탱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기후위기 대응이 필수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로 늘리는 정책(3020 재생에너지 목표)을 조기 실현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민주당은 기존 정부 정책대로 추진하면 조기 달성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통합당은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을 양대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설정하는데 부정적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이고, 기후위기 정책을 추진하는데 소요될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인 탄소세 도입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통합당은 생산비 증가로 인한 제조업 위축, 조세저항 또는 이중과세 우려 등을 내세워 부정적이었다. 탄소세의 효과와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으로 해석된다. 탄소세란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 있는 기업에 우선 과세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화석 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구조에서 벗어나는 데 목적이 있다. 탄소세로 세금이 늘어난 만큼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을 낮추면 세수 총액은 늘지도, 줄지도 않게 조정할 수 있다. 스웨덴은 1991년 탄소세를 도입한 뒤 201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은 26% 줄이고 경제는 78% 성장했다.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탈석탄 시점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과감하게 추가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통합당은 기간산업 형편과 주요 에너지원 간 균형을 이루는 시점을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고 답했다. 화석 연료 지원 축소에 대해서도 양당은 소극적이었다. 민주당은 당분간 화석연료 사용이 필수이며 수소 등 에너지 신산업 영역으로 공기업의 역할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통합당은 특정 에너지원을 축소·확대하는 건 각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접근이라고 반대했다.

휘발유, 경유 등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의 국내 판매금지 시점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판매금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데 친환경차 판매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통합당도 판매금지 시점을 정하는 것에 동의하는 데 국가 차원에서 새 시스템으로 전환은 각국 사정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양당 모두 판매금지 시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과 통합당과 달리 정의당은 두 정당보다 진전된 정책안을 내놓았다. 기후비상사태 선언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데 동의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2050년 넷제로 목표를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중을 40%로 대폭 상향 조정하고 같은 해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밖에 2030년까지 경유차 완전 퇴출, 자전거 도로 10배 확충, 탄소세 도입 , 전국 고속도로와 휴게소를 전기자동차 충전소와 태양광 발전기지로 전환하는 에코 고속도로 구축 방안 등도 제안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는 “기후변화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인 만큼 집권 여당 민주당과 제1야당 통합당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진전된 기후위기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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