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에 간 시인, 시인을 품은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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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간 시인, 시인을 품은 노동조합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02.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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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금융노조 정책실장, 8번째 시집 ‘금강산’ 출간
공광규 시인 [사진=녹색경제신문DB]
공광규 시인 [사진=녹색경제신문DB]

 

1986년 월간 ‘동서문학’에서 등단해, 이듬해 1987년 첫 시집 ‘대학일기’를 시작으로,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파주에게’ 등 7권의 시집을 낸 공광규 시인.

몇몇 이들에게 공 시인은 ‘노동조합 정책실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93년부터 한국노총 금융노조(위원장 박홍배)에 몸 담고,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공광규 시인이 새 시집 ‘금강산’(천년의시작)을 출간했다.

처음 책을 받아들면 예사(?) 시집 같지 않아 조금 놀란다. 380페이지의 볼륨은 다른 분야 여느 단행본들과 마찬가지다.

8번째 서사시 '금강산'(천년의시작, 13000원) [사진=천년의시작 제공]
8번째 서사시 '금강산'(천년의시작, 13000원) [사진=천년의시작 제공]

 

붓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공광규 시인은 지난 2004년 금강산 외금강과 해금강을 다녀온다. 금강산 관광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천하의 명승 금강산. 수많은 이야기가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깃들어 있고, 옛 사람들이 절경에 매혹되어 붓을 들었다가 표현을 잘못할까봐 붓을 놓았다는 곳. 금강산을 과연 나는 시로 써낼 수 있을까?”

책 첫 머리의 작중 화자의 말은 시인의 말과 다름 아니다. 또 이는 금강산을 알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의 말이나 다름 없다.

천하 명산이라는 금강산의 곳곳을, 그리고 그 가슴 떨리는 여정을 마치 기행문을 읽어가듯 편안한 싯귀로 동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려한 절경과 구석구석 전해내려오는 신비로운 전설에 대한 이야기도 마냥 즐겁고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다름아니라 여전히 가볼 수 없는 곳,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북녘 땅이기 때문이다.

외세에 의해 갈라져야 했고, 열강의 대리전으로 동포끼리 피를 흘렸던 땅이기 때문이다.

“2017년 사드 배치 문제로 남북이 금방 전쟁이 날 듯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 집필을 결심했습니다. 남북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외세에 지나치게 흔들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일의 논의든 경제협력이든 자주성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민족의 동질성을 일깨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과 흔적이 남아 있는 금강산을 시적 공간으로 잡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천하 절경을 직접 마주한 시인의 가슴은 벅찼다. 역시 생애 처음 보는 절경이었다는 기억이 압도적으로 밀려온다. 산이 웅혼하고 골골마다 기운이 생동했다. 380쪽의 서사시로도 미처 채 담지 못했던 봉우리와 골짜기, 그리고 선배 시인들이 그렸던 좋은 문장, 다채로운 수목과 화초, 길짐승, 날짐승,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한 권의 책에 다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든단다.

다양한 풍광과 그에 얽힌 전설, 그리고 금강산이란 공간에 뒤얽힌 우리네 아픈 근현대사까지 조곤조곤 들추어내고 있는 시집은 전 권이 3행으로 맞춰져 편집되어 더욱 읽기에 편안하다.

애시당초 이런 편집을 염두에 두고 시작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책으로 엮으며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재 금강산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시금 북녘땅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면 시인은 우선 기억 속 아로새겨진 금강산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고 싶다고 한다.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녘땅을 걸어서 백두산을 가보는 것도 시인의 꿈이다.

새로운 서사시 ‘백두산’을 기대한다.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성장.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파주에게' 출간. 윤동주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수상 [사진=녹색경제신문DB]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성장.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파주에게' 출간. 윤동주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수상 [사진=녹색경제신문DB]

 

엄혹한 시절에도 詩의 꿈은 피어나고

공광규 시인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성장한다.

시인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꾸었다. 중학생 때부터 시집을 읽고 시를 써보려고 했다.

엄혹한 시절 ‘필화’에 종종 연루됐다.

성당에서 열린 시 낭송회 사건으로 다른 도시로 전직해야 했다. 공기업 홍보실에 입사했는데, 대학 재학 중 낸 시집의 내용이 현실부정적이라고 해서 해고를 당했다.

노동조합과 인연을 맺게된 것도 그 이후부터다.

2년 8개월 동안 해고무효소송을 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패소했다. 충무로에서 홍보회사를 차려 영업을 하러 다니다가 노동조합에서 ‘당신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득됐던 것.

십수년이 흘러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법이 제정돼 복직을 권고했지만, ‘권고’라는 이유로 복직에 이르지는 못했다.

시집의 발문을 쓴 윤일현 시인은 젊었을 때 공 시인과의 인연 한 자락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1985년 6월 어느 날, 안기부 포항분실 분실장은 작은 책자를 한 권 들이대며 문초를 시작한다.

“공광규라는 인간의 글은 도저히...도대체 어떤 놈인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는,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네.”

 

20대 청년 노동자 공광규는 감히 절대 권력자인 전두환에게 “중국집 주인으로 물러나”라고 외친다. 영부인 이순자를 “요정 마담으로 보내라”고 절규한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과 가슴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망원렌즈나 현미경보다 예리하고 날카롭다.

틈틈이 일상의 사건이나 단상을 출퇴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적어둔다. 휴일이나 휴가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애쓴다.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세월도 만만치 않게 흘렀다. 그 어느 곳 못지않게 내외로 역동적인 조직이니만큼, 그동안 세월 속에서 어디 인상적인 기억이 한두가지일까? 평소 성품처럼 공 시인은 몸 담은 조직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신중하게 말을 아낀다.

하지만 자신처럼 노동조합에 몸 담은 후배들을 보면, 또 인생 후배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분단의 세월이 점점 흐를수록 무언가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고 할까? 현실의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고, 이제 한국인들의 활동 무대는 한반도라는 물리적 공간이 좁다.

그런 추세에서, 가깝지만 가볼 수 없는 금강산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흐릿해진다.

“시인 선생님...많은 아랫동네 동포들 모시고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금강산 문화회관에 모여 우리 민족 조상님들, 우리를 사랑했던 외국인을 모셔놓고 놀이판을 한판 벌이자고요. 금강산에 왔던 영랑 술랑 남랑 안상을 모셔오고, 나옹 서산 사명을 모셔오고, 양사언 김삿갓 정철을 모셔오고, 정선 최북 김홍도를 모셔오고, 황진이 김만덕 김금원을 모셔오고, 금강산을 좋아했던 중국인 일본인 유럽인 아라비아인 다 모셔와 놀자고요. 우리 북녘 동포들은 언제나 금강산을 찾아오는 아랫동네 동포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것입니다.”

각 장마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해설원 동지’는 아마도 시인이 금강산에서 마주쳤을 법한 북녘 여성이다.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시인이 그리고 싶었던 금강산은 천하 절경도, 웅혼한 민족의 기상도, 외세 억압에 대한 민초들의 저항도, 다 좋지만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이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다시 가볼 길이 잠시 막혀있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말이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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