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저의 추억을 파괴한 죄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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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저의 추억을 파괴한 죄는 매우 크다
  • 이준혁 게임전문기자
  • 승인 2020.02.04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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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3 : 리포지드가 발매됐다. 이 게임은 2002년에 발매됐던 워크래프트 3와 확장팩을 묶은 게임으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함께 팬들에게 큰 기대를 모았다. 특히 먼저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과거와 같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워크래프트 3 : 리포지드는 블리즈컨 2018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후 2019년 안에 발매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발매는 한 차례 연기됐고, 2020년 새해가 시작하자 마자 발매됐다.

 
블리자드라는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재미있을 때까지, 만족할 때까지 게임을 수정하고, 개발하며, 오래 제작한 게임조차도 마음에 안들면 개발을 취소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의 게임을 발매하는데 기간은 길어도 완성도와 재미가 보장되기 때문에 팬들은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주곤 했다. 특히 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를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이며, 워크래프트 3는 국내에서는 스타크래프트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팬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어 왔다. 당연히 거의 20년 가까이 지나 새롭게 발매되는 이 게임에 거는 기대는 당연히 컸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자 유저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재 이 게임은 메타크리틱 유저 평점에서 0.5점을 기록하는 대단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유저들의 추억을 무참하게 박살낸 결과일 것이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0점을 주고 있다. 관련 커뮤니티를 잠시만 찾아보면 알겠지만 정말 블리자드에서 제작한 게임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수준을 보여준다. 수많은 버그와 엉성한 그래픽과 애니메이션들, 그리고 에디터 등등. 지금 유저들이 제기하는 수많은 문제점은 작년 11월에 있었던 베타테스트에서도 지적됐다. 하지만 1월 29일에 발매한 것만 봐도 베타테스트 때 나온 수많은 문제점들을 수정할 시간은 당연히 시간적으로 가능할 수가 없다. 말레이지아의 개발사가 외주로 개발을 참여했지만 해당 회사는 세계적인 유명 게임의 개발을 담당해 왔고, 또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역시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결국 외주 개발사의 퀄리티 문제 보다는 블리자드에서 제대로 개발 관리가 이루어졌느냐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유저들에게 맹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유저들은 돈을 내고 베타 테스트 수준도 안되는 게임을 플레이한 것이다. 워크래프트는 지금의 블리자드를 있게 만든, 자신들의 상징적인 게임이다. 워크래프트 3가 국내에서는 비록 스타크래프트 같은 국민 게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20여년 가까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자신의 상징과 같은 작품을 스스로 무너트려 버렸다. 과거 블리자드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워크래프트 어드벤처나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비록 외주 합작이지만) 등이 개발 취소된 사례를 알고 있다. 게임 회사들이 개발을 포기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블리자드는 조금 달랐다. 장인 정신으로 뭉친 회사였기에 다른 회사들이라면 충분히 발매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들은 아쉬워하면서 완벽한 수준의 게임만을 발매하기 위한 그들의 장인정신에 박수를 보내왔다. 하지만 이번 워크래프트 3 : 리포지드는 그러한 과거의 유저친화적이며 고집스러울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줬던 장인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개발 중인 다른 게임들도 과거 수준의 완벽함을 볼 수 있을지는 당연히 알 수가 없다. 블리자드는 유저들의 비난에 급하게 패치도 하고 환불 페이지를 만드는 등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팬들이 원하는 것은 현 시대에 어울리는 최고 수준의 워크래프트 게임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유저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발매된다면 지금의 팬들은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블리자드가 탄생한지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블리자드는 여전히 수준 높은 게임 회사인 것 부인할 수 없다. 워크래프트 3 : 리포지드를 전면 업그레이드를 통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수준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가끔 유명한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서 폭망한, 혹은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워크래프트 3 : 리포지드가 블리자드에게는 감추고 싶은 흑역사가 될지 아니면 다시 완벽하게 탈바꿈을 시켜 새로운 역사를 써낼지는 고스란히 블리자드의 몫이다. 지금 블리자드는 유저들의 즐거운 추억을 파괴하고 팬들을 실망시킨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이준혁 게임전문기자  gamey@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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