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학, "그래도 미래는 직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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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학, "그래도 미래는 직무급"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02.03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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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쌓인 오해...해법 찾기보다 불신 조장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직무중심 인사관리에 관한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직무중심 인사관리에 관한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한국 경제의 침체와 그 너머 기업 경쟁력의 문제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다양한 증상 중 하나에 공포를 느낄 필요도 없고, 특정한 규제 완화가 마치 만능의 해법인 양 침소봉대할 이유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 넓은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임금구조에 대한 담론이다.

임금의 구성요소, 지급형태, 수준 등 세부적으로 다양한 논의거리가 파생된다. 특히 각론으로 들어가자면, 각 경제주체나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시각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문제점도 보인다. 우선 당장 눈에 밟히고 시급한 것은 이른바 '이중구조'라고 표현되는 격차의 문제일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출산율과 인구 감소 등의 요인 때문에 젊은 일손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국내 기업의 임금체계에 대한 논란이 시작된다.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논의가 아니기 때문에 진단과 해법도 도출돼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또 경영계의 줄기찬 개선 의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무수한 논의를 통해 상당한 공감대 형성을 만들어 놓고 구체적인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성숙한 사회적 합의 문화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 또 사안에 기대 영달을 꾀하려는 사회적 '바이러스'에 아직 면역력이 약하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이미 지금으로부터 7~8년 전부터 노·사·정·학이 임금체계 개선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의 임금체계의 경우, 해당 당사자들이 고숙련 노동자들인 만큼 숙련직무 위주의 임금체계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제도를 악용한 무작정의 임금 깎기는 오히려 제도시행의 역효과를 부를 따름임” (정년연장 법제화에 대한 한국노총 논평, 2013,  한국노총).

“향후 임금 유연성을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임금체계를 능력, 직무 및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함” (고령자 고용과 임금체계, 2012,  한국경총).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임금 및 직무체계를 직무분석, 평가보상시스템 개선을 통해 성과․능력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일터혁신지원사업, 2012, 고용노동부).

“정년 60세 제도 안착을 위한 효과적인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 그 첫 번째가 국내 현실에 적합한 임금체계 개편(직무급제 등) 개발이 필요함”(이지만, 2013).

임금체계 유형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임금체계 유형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오해의 시작

직무급 도입을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에서 가장 먼저 부딪치는 주체는 역시 노·사다. 경영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직무급 도입을 주장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직무급 도입에 대해 본격적인 거론을 시작한다.

그러나 노동계는 경영계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이유는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의 확대라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묵은 갈등(?)을 시시때때로 재생산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다. 고용노동부가 수시로 언급하고 있는 직무급 도입과 직무성과 중심의 인사관리에 대한 정책은 도리어 노동계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개별 노동자의 입장에서 임금체계 변화 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현재의 임금보다 줄어드는 방식으로 보상체계가 바뀐다는 점이다.

직무급 도입을 비롯해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종종 심지어 "고임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밑도 끝도 없이 임금을 깎자는 주장이 씨알이나 먹힐지 의문이다. 누구를, 어떤 기준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치밀한 설득이 있어도 가능할까 말까 한 사안에 말이다.

숙련에 대한 오해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다름 아닌 '숙련'에 대한 해석이다.

직무급이란 체계에서 직무의 가치란 다름아닌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숙련이다. 

이는 지식, 기술, 능력, 역량이라고 말해도 다르지 않다. 영어로는 주로 'skill'로 정의하는 것을 보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숙련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고 있다. 경력이나 업력에 대해 보다 중시한다.

이런 생각 차이에서 결론은 갈라진다. 노동계는 숙련급을 보다 선호하는 경향도 엿보이는데, 이는 다름아니라 '통역(?)'의 차이로 비롯해 숙련급을 연공급과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사례는?

연공급적인 임금체계의 가장 대표적 예는 이웃나라 일본이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체계를 한국 사회는 일본의 모습을 본 따 가져왔다.

일본의 기업들이 현재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더라도, 한국 사회의 현재 논란에 대한 진단은 오히려 한번 겪어봤던 일본의 학계가 좀 더 구체적이다.

일본 학계의 직무급 도입에 대한 실패 요인 분석은 ▲고도성장기 새로운 직무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때마다 직무분석이 새로 이뤄져야 하는 점에서의 관리부담 ▲종신고용을 전제로 한 인사체계에서는 내부의 잦은 이동으로 직무변화가 자주 발생함 ▲경제성장 초기 낮은 임금수준에서 직무변화로 인해 불안정성이 더욱 커짐 ▲힘 있는 노조 사업장의 경우 노사갈등 격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상황에 빗대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나아갈 길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직무중심 인사관리와 관련한 자료에는 직무급 요소를 도입한 임금체계 개편 사례들이 소개된다.

각각 ▲수당구조 단순화 ▲상여금 기본급화 등을 통한 실질화 ▲통상임금 범위 확장 등을 통한 장시간노동 개선 ▲노사 공감대 형성을 통한 통상임금 소송 해결 등의 사례다.

개별 노사가, 혹은 고용노동부 산하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시스템 정비를 마친 기업들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이러한 변화가 자리잡기 위해선 보다 폭 넓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별 기업 차원의 합의가 아닌, 산업별, 전국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현실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현 정권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 방향인데, 발길은 아직 한 발 떼기가 어렵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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