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확산방지 ‘골든타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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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확산방지 ‘골든타임’ 놓쳤다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1.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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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직무유기’와 중국 ‘늑장 대처’로 '우한 폐렴' 확산
27일 현재 감염자 3000명에 육박, 사망자는 80명
세계보건기구.[사진=WHO]
세계보건기구.[사진=WHO]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감염자가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27일 오전 9시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는 총 2794명이다. 이 중 80명이 사망했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졌다. 이런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일한 대처에 국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WHO는 지난 23일 긴급위원회를 열고 이번 중국 ‘우한 폐렴’에 대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를 논의했었다. 결론적으로 PHEIC를 선포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며칠 만에 심각한 오류였다는 게 판명됐다.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감염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치료제와 백신 마련도 여의치 않다. RNA 바이러스는 자체적으로 계속 변종이 생기기 때문이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늦어지고 전염력이 강해지면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한 폐렴’에 대한 신속한 정보 제공 측면에서도 WHO는 ‘직무 유기’에 가까운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는 27일 9시 38분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우한 폐렴’ 감염증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27일 오전 9시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는 총 2794명(사망 80) 보고됐다”며 “중국 2744명(사망 80), 태국 8명, 홍콩 8명, 마카오 5명, 대만 4명, 싱가포르 4명, 일본 4명, 말레이시아 4명, 베트남 2명, 네팔 1명, 미국 3명, 프랑스 3명, 호주 4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같은 시간 WHO 홈페이지에는 새로운 감염자 정보가 전혀 없다. 고작 최신 정보는 ‘Novel Coronavirus(2019-nCoV) SITUATION REPORT-5, 25 JANUARY 2020(상황보고서-5)’으로 이 내용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1320명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수치는 며칠 전 정보로 이미 의미 없는 자료에 불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데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하고 있지 않다.

WHO의 안일한 대처와 중국 정부의 ‘늑장 대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는 3000명에 이르고 있다. 사망자도 조만간 1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현재 80명이 사망했는데 모두 중국인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사망자가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일 비상사태 선포를 유보하면서 테드로스 아드하놈(Tedros Adhanom) WHO 사무총장은 중국 외 지역에 사람 간 전염 증거가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 판단은 며칠 만에 심각한 판단 착오라는 게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또 중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왔다고 강조했는데 이 또한 우한의 절체절명 상황을 보면 도대체 제대로 알고 이런 말은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WHO는 “현재로선 여행과 교역에 대한 더 광범위한 제약을 권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HO가 각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배려해 달라는 압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WHO가 ‘여행과 교역 제약’을 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전염병을 통제하고 방어해야 할 WHO가 오히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슈퍼 전파자’ 노릇을 한 셈이 돼 버렸다.

WHO의 이 같은 판단 착오와 심각한 현실 인식 결여 사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에볼라’ 사태 때도 안일한 대처로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당시 에볼라 치료제에 대한 임상이 제때 이뤄질 수 있었는데 WHO의 무관심으로 늦어진 것이 밝혀졌다.

당시 벨기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제약업체는 에볼라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WHO에 연락을 취했다. 관련 임상 시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WHO 그 누구도 에볼라 백신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WHO 측은 GSK의 에볼라 백신 개발에 대해 "감사하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만 답했다. 에볼라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에볼라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임상을 거칠 수 있었는데 WHO의 무관심으로 ‘사후약방문’이 되고 말았다.

이번 ‘유한 폐렴’에서도 WHO의 ‘사후약방문’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최근 전염병의 가장 큰 속성 중 하나가 ‘빠른 전파력’에 있다.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 전파는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WHO가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국제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무엇보다 출입국이 제한된다. ‘사람과 사람’ 간 전파되는 전염병은 이동을 제한하는 게 우선 대책이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는 현재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되고 있다. WHO와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WHO는 전 세계 보건을 책임지는 국제기구이다. 전염병에 대해서는 ‘늑장 대처’보다는 ‘과잉 대응’이 우선이다. 물론 ‘과잉 대응’으로 뒤늦게 각국으로부터 ‘지나친 대응’이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다. 수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죽는 것보다는 이 같은 ‘지나친 대응’이라는 ‘유쾌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곳이 WHO이다. 지금 WHO는 보건을 생각하기 이전에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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