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 / 눈물을 가르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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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 눈물을 가르친 강의
  • 조원영 기자
  • 승인 2016.10.1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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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충남 서천군 종천면 종천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기억에 희미하지만 졸업식장에서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 2절을 부를 때 누군가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면서 식장이 울음바다가 됐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그 후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졸업식장에서 운 기억은 없습니다. 그리고 '졸업식 노래'를 부른 기억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의 졸업식 노래는 지금도 3절까지 저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초·중·고교 선생님들에 의하면 요즘은 졸업식 때 우는 풍경은 없고, 졸업식 노래대신 교가를 부른다고 합니다. 졸업식도 교실에 앉아서 모니터로 진행되는 곳이 많고, 그 자리에선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교생활을 찍은 영상물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친구와 스승과 정든 교실과의 헤어짐에 눈물이 날만큼 아쉬움이 없는 졸업식이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고교 남학생들 사이에선 해방감을 표시한다고 밀가루를 뒤집어쓰거나 교복을 찢는 것이 유행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뜸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달 제주도 제주대학의 한 강좌의 졸업식에 초청받아 갔다가 학교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졸업식의 눈물을 봤습니다. 이 대학 내에 개설된 휴먼 르네상스 아카데미(HRA)라는 이름의 비정규 인문학 강좌의 졸업식에서였습니다.
 
이 강좌의 수강기간은 1년으로 수강생은 전공이나 학년에 관계없이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 중에서 선발합니다. 개강 10년째로 올해 졸업생 29명을 포함, 그동안 249명을 배출했고, 졸업식과 함께 치러진 입학식에서 10기 37명이 새로 입학했습니다.
 
교수진으로는 기업 언론 은행 대학 공직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약하던 10여명이 재능기부 차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좌의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김수종 씨는 한국일보 주필을 지낸 제주도 출신의 언론인으로 학생들 사이에선 '교장'으로 불립니다. 
 
학과목은 인성함양을 위한 고전 읽기, 취업역량 제고를 위한 기업실무교육을 축으로, 7박8일의 겨울캠프, 80시간의 봉사활동, 2개월의 현장실습을 의무화한 게 특이했습니다. 강의는 주중을 피해 토요일에 하는데, 학점이 없이 학생들끼리의 협력수업을 중시한다고 합니다.
 
강좌의 운영은 제주도와 제주대학에서 경비와 시설 지원을 받지만 일반후원자 30여명과 취업한 졸업생 40여명의 십시일반 후원금이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졸업생 후원자들은 매월 1~2만원을 후원하는데 금액은 적어도 가장 소중한 후원금이라고 김 교장은 말합니다.
 
일반 후원자 가운데는 월 100만원씩 지난 5년간 도와 준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 최대 후원자이고, 나머지는 연간 기십만 원에서 기백만 원씩 모두 4,000만 원 정도의 후원을 받아 강좌 운영비의 절반 정도를 충당한다고 했습니다.
 
졸업식의 눈물은 수료증을 받을 때부터 시작돼 단상에 늘어선 교수들로부터 축하의 악수와 포옹을 받으면서 조금씩 격해지다 졸업소감을 말하는 순간에 폭발했습니다. 교수 중에서도 손수건을 꺼내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울먹이며 소감을 발표하는 동안 하객들은 줄곧 웃었습니다. 학생들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님을 하객들은 이미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학생이 소감을 말하고 나서 넙죽 큰 절을 올렸을 때, “교수님들 아프지 마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을 때 하객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식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도대체 왜 운 거니?’라고 물어봤습니다. “뭔가 벅찬 감정이 치밀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나 중고교 졸업식 때 운 기억이 있니?”라는 물음엔 “아뇨”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대학 졸업 때도 울 일이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교 6년을 같이 다닌 학우들과 헤어질 때도 울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자원봉사 교수들이 가르치는 1년짜리 강좌를 졸업하며 펑펑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에게 눈물을 가르친 것만으로도 인성함양을 목표로 한 이 강좌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학생이 말한 벅찬 감정의 기저에는 학생 간, 사제 간, 선후배 간에 인간적인 교감이 깔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중에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면 서먹해지지 않았을까요?”라는 한 학생의 말이 귓가를 맴돕니다. 경쟁만 가르치지 협력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의 교육풍토가 졸업식의 눈물을 메마르게 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점에서 강의에 학점이 없고, 협력수업을 중시한 수업방식이 가져온 결과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면 협력의 열매가 경쟁의 열매보다 크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학업의 상대평가를 거부하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니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는 듯도 합니다.
 
HRA의 강의 분위기였기에 가능했겠지만 이 강좌에는 졸업식 노래와 함께 학교에서 사라진 사은회가 살아 있었습니다. 졸업식 전 날 제주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열렸는데, 이전의 졸업동기들이 돌아가며 마련하는 이 사은회의 올해 주최 측은 6기 졸업생들이었습니다.
 
학생이 교수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는 것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세상이지만 대부분 취업한 졸업생들이 얼마씩 모은 돈으로 은사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는 이 사은회는 김영란법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조원영 기자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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