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유료방송, 통신사 중심으로 시장 재편...마지막 걸림돌 '합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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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유료방송, 통신사 중심으로 시장 재편...마지막 걸림돌 '합산규제'
  • 정두용 기자
  • 승인 2020.01.06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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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유플러스, CJ헬로 품고 업계 2위로...SKB-티브로드 결합도 막바지
- KT, 합산규제에 발 묶여...국회 논의 길어져 '발만 동동'
- 중소·대기업 모두 바라는 유료방송시장개편...합산규제에 '발목'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희망찬 미래, 새로운 10년의 시작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신성장동력은 AI(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에 달려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출발도 전에 대못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모델이 한국에 오면 70%가 ‘불법’ 판정을 받는다. 그만큼 규제가 심하다는 반증이다.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정부 부처의 해석에 따라 하루아침에 기업 운명이 바뀐다.

택시업계의 반대로 사업 중단 위기에 놓인 차량공유서비스 ‘타다’가 대표적 사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4월 총선에서 당장 표가 되는 택시업계 이익을 위해 이른바 '타다금지법' 규제에 나설 정도다.

네이버는 최근 한국을 탈출해 일본에서 원격의료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선 불법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대상 원격의료 서비스는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대에 막혀 수년째 시범사업에 머물러 있다. 규제가 혁신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미디어' 녹색경제신문은 2020년 새해를 맞아 '대못규제에 발목잡힌 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신년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유료방송시장의 개편이 빨라지고 있다. [각 사 로고.]
유료방송시장의 개편이 빨라지고 있다. [각 사 로고.]

“정부의 심사가 마무리 돼 인수가 빠르게 진행됐으면 한다”

한 중소유료방송사 직원의 얘기는 충격이었다. 통상적인 인식과 정반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편입될 때, 그 소속 직원들의 반발이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랐다.

그가 인수를 바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경영 불확실성과 고용 불안 증대. 대기업의 인수로 이런 문제들이 크게 완화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공급과잉이라고까지 진단하는 유료방송시장. 그 정글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의 처지는 위태로웠다. 그는 “유료방송시장 재편은 필수적”이라며 “소비자가 느끼는 케이블 TV의 매력은 사라진지 오래”라고도 했다.

유료방송은 서비스 형태에 따라 인터넷TV(IPTV), 케이블TV, 위성방송으로 분류된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케이블TV가 IPTV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공세까지 겹치며 가입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케이블TV 사업자가 이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같은 목소리가 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CJ헬로 노동조합은 지난 10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유료방송 M&A(인수·합병) 유보를 결정하자, ‘기업결합에 대한 조속한 승인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CJ헬로는 케이블TV 1위 사업자였다.

이들은 당시 “깊은 유감을 표하며, 유료방송 시장을 20년 넘게 묵묵히 일구어온 노동자들을 생각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규제로 유료방송시장 재편이 늦춰지며,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6년 정부의 결정으로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합병이 한 차례 무산됐는데, 이번 기회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사측이 아닌 노조에서 내놓았다.

이들은 “유료방송 시장재편은 한 차례 늦춰진 바 있다”며 “당시 시장획정의 기준으로 삼았던 지역단위가 전국단위로 달라지고,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경쟁자가 출현하는 등 그사이 시장은 빠르게 변화됐다”고 꼬집었다.

CJ헬로 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공정위의 CJ헬로와 LG유플러스 간의 인수합병 유보결정에 대해 반발, 케이블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공정하고 조속한 심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CJ헬로 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공정위의 CJ헬로와 LG유플러스 간의 인수합병 유보결정에 대해 반발, 케이블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공정하고 조속한 심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다행히 최근 유료방송시장에서의 기업결합을 승인하고 있는 추세다. SK텔레콤의 CJ헬로 M&A 무산 이후 약 4년 만에 IPTV 중심으로 시장 개편에 속도가 붙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도 유료방송시장의 재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달 15일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조건부 인가했다. 9개월간 진행된 인수과정이 이날 마침표를 찍고, 유료방송시장 재편에 속도가 붙는 신호탄이 됐다. CJ헬로는 LG헬로비전으로 사명을 바꾸며 올해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인수ㆍ합병도 과기정통부의 심사를 지난달 30일 넘었다. 두 회사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사전 동의만 받으면 결합된다.

정부의 승인으로 유료방송시장 재편이 빨라지곤 있지만, 아직 남은 걸림돌이 있다. ‘합산규제’는 유료방송시장의 남은 불확실성으로 꼽힌다.

중소유료방송사 직원은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유료방송시장의 재편을 바라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라며 “합산규제 불확실성을 지켜보고 있는 두 회사 모두 현재 시장상황을 고려했을 때, 기업결합을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태희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이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LG유플러스-CJ헬로 인수와 관련된 브리핑 열고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1사 1MVNO 원칙은 깨졌다”며 “LG유플러스가 제안한 방안이 분리매각보다 알뜰폰 사업을 활성화와 가계통신비의 인하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두용 기자]
이태희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이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LG유플러스-CJ헬로 인수와 관련된 브리핑 열고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정두용 기자]

◇시대에 역행하는 ‘합산규제’...아직 남아있는 불확실성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사업자가 특수 관계회사인 타 유료방송 사업자를 합산해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 1/3(33.33%)을 넘지 못하게 막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2015년 ‘3년 일몰’ 조건으로 국회 통과했다. 합산규제 효력은 지난해 6월27일 없어졌으나, 국회가 ‘합산규제 일몰’에 따른 유료방송 규제개선방안을 정부에 요구했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지난해 11월 부처 합의안을 제출한 상태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기서 발생했다.

KT는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이 30%가 넘는다. 국회에서 합산규제 관련 논의를 열어놓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경쟁사와 달리 M&A에 적극 나설 수 없었다.

이 사이 경쟁사들은 케이블TV 사업자들을 품으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조건부’라지만, 정부는 이들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KT는 국회의 ‘합산규제’ 논의에 발이 묶여 시장의 재편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던 셈이다.

KT도 케이블TV 사업자인 딜라이브의 인수를 위해 실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의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순 없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KT는 현재 유료방송시장에서 공고한 1위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LG유플러스는 CJ헬로를 품었고,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기업결합이 막바지에 와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KT의 지난해 상반기 기준 IPTV 점유율은 21.44%다. 여기에 KT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 점유율은 9.87%다. KT가 차지하는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31.31%로 SK브로드밴드(14.7%ㆍIPTV)와 LG유플러스(12.44%ㆍIPTV)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LG유플러스가 케이블TV 1위 사업자인 CJ헬로(현 LG헬로비전)를 품으면서 점유율이 24.72%로 올랐다.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케이블TV)를 인수ㆍ합병하게 된다면 24.03%를 차지하게 된다. KT는 더 이상 유료방송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아니게 됐다.

유료방송시장 재편 후 점유율 예상치. [그래픽=연합뉴스]
유료방송시장 재편 후 점유율 예상치. [그래픽=연합뉴스]

유료방송시장은 점유율이 곧 수익의 총액을 의미한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 사업인만큼 글로벌 OTT 기업들과도 경쟁이 이뤄지는 분야다. 이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만 비슷한 경쟁이라도 가능하다는 지적이 업계 일각에서 나오기도 한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케이블TV도 IPTV도 결국엔 가입자가 많아야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라며 “시장의 논리에 역행하는 합산규제를 국회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글로벌 OTT기업은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료방송시장의 재편엔 속도가 붙고 있지만, 합산규제의 불확실성은 한동안 유지될 전망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지난 11월 올라온 유료방송 규제개선 방안을 아직도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 두 달 째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과방위는 법안2소위를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법안과 현안을 다루고 있다. 지난 달 27일 열린 법안2소위에선 실검법 논쟁으로 단 한 건의 ICT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같은달 30일 열린 소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비쟁점법안도 처리가 어려운 국면인데, 합산규제를 테이블에 올려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패스트트랙 충돌,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등의 일정까지 예정돼 있어 4월 총선 이후에나 논의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선 21대 국회로 넘어가며 늘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KT의 딜라이브 인수,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향후 현대HCN 등 유료방송사업자 추가 인수에 나설 가능성까지. 유료방송시장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국회가 요구한 규제 법안은 시장의 발목만 잡고 늘어지며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OTT 시장에 대응한 국내 미디어콘텐츠 사업의 대응책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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