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 연대기 3 – 과거 명성에 미달한 플레이스테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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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연대기 3 – 과거 명성에 미달한 플레이스테이션 3
  • 이준혁 게임전문기자
  • 승인 2020.02.01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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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2는 가정용 게임기 역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소니는 가정용 게임기의 제왕이었던 닌텐도를 또 다시 따돌리고, 게임 업계의 최강자가 됐다. 2000년에 탄생한 플레이스테이션 2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구형 게임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TV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HDTV가 보급되면서 4메가의 비디오 램을 탑재한 플레이스테이션 2는 저해상도라도 작은 비디오 램으로 인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낮은 해상도와 텍스쳐 맵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계가 나타났다. 이제 세상은 더욱 강력한 성능을 가진 차세대 게임기를 원하게 된 것이다.


소니는 당연히 사상 최대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후속 기종을 준비 중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그리고 새로운 플레이스테이션 3는 셀 CPU라는 것을 사용하며, 고성능을 갖출 것이라는 정보를 조금씩 흘렸다. 그 후 2006년 11월 11일, 일본에서 발매를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발매됐다. 한국은 2007년 6월에야 발매됐고, 가격도 518,000원으로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 3는 굉장히 높았던 기대에 비해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에서는 499달러, 일본에서는 49,980엔로, 역시 고가의 게임기 축에 속했다. 더군다나 경쟁자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1년 전인 2005년 11월에 역시 고해상도 그래픽을 표현할 수 있는 XBOX 360을 발매한 상태였다. 따라서 후발 주자가 된 소니로서는 1년이라는 공백과 여러 난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플레이스테이션 3는 HD 시대에 맞춰 고해상도를 지원하고, 50기가의 용량을 수록할 수 있는 블루레이 디스크를 사용하며, 빠른 게임 플레이를 위해 하드디스크까지 기본 탑재했다. 플레이스테이션 3의 가격이 비싸진 원인은 다름아닌 셀 CPU와 블루레이 디스크에 있었다. 당시 고가인 블루레이 디스크와 셀 CPU는 계속해서 플레이스테이션 3의 발목을 잡았다. 성능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XBOX 360에 비해 1년이 늦게 발매됐기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 3는 초창기에 꽤 고전을 했다. 동시 발매됐던 게임도 그다지 우수한 타이틀이 없었고, 멀티 플랫폼 게임들은 XBOX 360이 더 우수했다. 해상도나 프레임, 그래픽 효과 등이 XBOX 360이 더 좋았다. 플레이스테이션 3 발매 초기는 낯선 셀 CPU와 부실한 개발 도구 등으로 개발 난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발매 초기에는 하드웨어 생산양마저 부족한 등 여러 문제점이 있었으나 10여년이 넘게 게임 업계에 참가한 소니 답게 서서히 저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호환시켰던 칩 셋을 제거하여 단가를 낮추는 등 계속해서 원가 절감을 하며 적자 폭을 줄였다. 한편 XBOX 360에 계속 비교당했던 게임 소프트에서도 구세주가 하나 둘 등장했다. 소니는 강력한 퍼스트 파티 개발사를 보유했는데, 그 위력이 조금씩 빛을 발했다. 너티독은 언차티드라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통해 잭 & 덱스터 같은 아동용 게임에서 벗어나 최초의 성인 취향 게임을 공개했고, 수준 높은 그래픽을 통해 팬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2 액션 어드벤처 게임 중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갓 오브 워 1, 2로 주목받은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도 갓 오브 워 3를 공개하는 등 오리지널 게임과 인기 게임의 후속작들이 하나 둘 공개됐다. 특히 너티독은 언차티드 1,2,3와 라스트 오브 어스를 통해 무명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개발사와 플레이스테이션 3의 구세주가 됐다.
 

이렇게 플레이스테이션 3의 오리지널 게임들이 하나 둘 발매되면서 조금씩 판매량도 상승해 갔고, 개발 환경도 개선됨에 따라 서드파티들의 퀄리티도 점점 좋아졌다. 특히 GTA4와 GTA5가 발매될 당시에는 본체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8,700여만대가 판매되어 1억대를 돌파하지는 못했으나 갖은 악천후 속에서 얻은 성과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만족할만한 수치로 보인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구타라기 켄은 플레이스테이션 3의 초기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현역에서 물러난다.


한편 단순한 게임기를 넘어 홈 엔터터인먼트 기기로서 사용할 수 있도록 플레이스테이션 3를 디자인했다. 그 결과 전용 웹 브라우저의 탑재와 미디어 서버로서의 기능, 동영상 플레이어나 PSP를 통한 리모트 플레이 등을 구현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네트웍 시대가 열리면서 PSN을 통해 게임의 다운로드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고, FPS 같은 멀티 플레이 위주의 게임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어 게임이 대폭 증가하면서 비디오 게임 시장이 성장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이제는 한국어 게임이 아니면 플레이하기 싫을 정도로 많은 게임들이 한국어로 발매됐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3 초기 시절, 게임기의 판매량이 많지 않았던 당시에도 꾸준하게 한국어 게임을 발매해 달라며, 해외 여러 개발사들을 설득하는 등 SIEK가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GTA 5 같은 게임도 한국어로 발매되는 등 믿을 수 없던 사건이 현실로 일어났다. 한국어 게임이 많이 발매됨에 따라 부작용(?)으로 외국어가 나오는 게임은 유명한 게임일지라도 플레이하기 싫어지는 일이 생길 정도였다고 할까?

 

 

 

이준혁 게임전문기자  gamey@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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