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재의 CEO열전] 정용진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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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재의 CEO열전] 정용진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박금재 기자
  • 승인 2019.12.1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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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으로 화제
급박한 경영환경 딛고 다시 일어날까 기대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이 화제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속에는 갖가지 음식 사진들이 가득하다. 손수 만든 그의 음식들은 날이 갈수록 모양새가 나아지고 있다. 그가 최근 올린 '어란볶음밥'의 사진은 5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얻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좋아요'가 곧 힘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인 백종원 씨와 정 부회장의 친분도 한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정 부회장은 방송에서 백종원 씨가 못난이 감자 30톤을 사달라고 부탁하자 흔쾌히 수락하며 소위 '쿨한' 이미지를 가져가게 됐다. 정 부회장은 이미지를 얻고 이마트는 얼떨결에 '감자'를 먹었다. 대표의 즉흥적인 결정 때문에 이마트는 계획에도 없던 못난이 감자를 판매하게 된 것이다. 

"키치의 왕국에서는 가슴이 독재를 행사한다."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1984년에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발표했다. 위 문구는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다. 소설의 제목과 이 문장이 교묘하게 정 부회장의 행보와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평온하고 쿨한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속 모습과는 달리 정 부회장이 책임져야 하는 거대한 조직은 '대격변'을 겪고 있다. 이마트를 지난 6년 동안 지탱했던 이갑수 대표는 실적 부진을 책임지며 자리에서 물러났고 정 부회장의 야심작이었던 '삐에로쇼핑' 명동점은 폐점 수순을 밟고 있다. 정 부회장이 1년을 공들였다는 삐에로쇼핑의 대표 매장이 문을 닫는 이유가 고작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수익률 악화'라니 우스운 일이다. 

정용진의 왕국에서는 모든 일이 참 '가볍게' 일어난다. 

'일시적이고 계획된 적자'라더니 한 조직의 수장이 경질되고 대형 매장이 문을 닫으며 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정 부회장은 남의 집 불구경을 하듯 방관하며 인스타그램에 하루에도 몇 개씩 사진을 올려댄다.  

다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돌아가보자. 소설 속 '사비나'라는 인물은 모든 '키치'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키치라는 개념은 세상의 많은 것을 사실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떠한 이미지로 우리가 받아들이려는 것을 뜻한다. 사비나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인데, 미국에서 자신을 '공산주의를 피해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찾아온 가련하면서도 용기있는 여성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혹시 정 부회장 또한 거울속의 본인을 '용기있는 예술가'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과 방송을 통해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혹은 예술가'와 '기업인' 그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느껴진다.

정 부회장이 딸과 함께 요리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정 부회장이 딸과 함께 요리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미안한 얘기지만 정용진의 인스타그램 속 '좋아요' 수와 그가 책임진 조직의 실적은 반비례하고 있다. 백종원 씨가 방송 속에서 승승장구하며 그의 사업도 더욱 탄탄해진 것과 비교하면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은 녹록지 않고 '될 사람'은 뭘 해도 되지만 '안 될 사람'은 뭘 해도 안 되는 풍경을 우리는 자주 마주한다.

반면 정 부회장의 동생이자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인 정유경 씨의 행보는 무겁다. 정 사장의 무거움은 오프라인 채널이 직면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정 사장은 공개석상에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용하고 뚝심있다는 평가를 받는 정 사장이 이끄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업계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신세계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이 내년에 10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칼바람이 불었던 이마트 임원인사와 달리 신세계 임원인사는 검증되고 무게감 있는 인물들의 맞교환만 이뤄졌을 뿐 안정감 있는 임원인사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2의 못난이 감자와 삐에로쇼핑을 감당하기에는 정용진 부회장을 둘러싼 현실이 급박하다. 개인으로서 가진 목표와 주목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도 비판할 수 없으나, 그는 수많은 직원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자리에 앉아있다. 왕좌의 무게는 가벼울 수가 없다.

정 부회장이 '셀럽'이 아닌 성공적인 '기업인'으로서 다시 우뚝 서길 기대해본다. 정답은 인스타그램 속 '좋아요'의 가벼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앞을 향해 걷는 발걸음의 무거움에 달려있다.

박금재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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