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배터리업계의 때아닌 ‘피해자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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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배터리업계의 때아닌 ‘피해자 코스프레’
  • 정종오 기자
  • 승인 2019.12.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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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배터리 시대이다.”

우리 일상에서 배터리는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이 됐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10월 9일 올해 노벨화학상을 발표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만든 세 명의 학자에게 수여했다. ‘미래는 배터리’라는 메시지를 내세운 셈이다. 휴대폰, 노트북, 전기자동차는 물론 풍력과 태양 등 신재생에너지 등에 필요한 ‘리튬이온배터리’에 후한 점수를 줬다. 배터리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노벨위원회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지금 시대 필수품인 휴대폰뿐 아니라 앞으로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저장장치로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최고의 관심을 받는 이 분야에서 ‘배터리 피해자 코스프레’가 펼쳐지고 있다. ‘코스프레’는 ‘코스튬(Costume)’과 ‘플레이(Play)’의 합성어이다. 이른바 ‘의상 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기업 총수들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하거나 법정에 나올 때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휠체어 코스프레’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나라 배터리업계에 때아닌 ‘피해자 코스프레’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잇따른 화재에 대해 배터리업계들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우는소리를 한다. 자신의 책임보다는 다른 곳으로 그 원인을 돌려 버린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인력 빼가기’를 둘러싼 소송은 ‘피해자 코스프레’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 인력 약 70명을 빼가면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국제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 인력을 데려가면서 LG화학이 그동안 개발해 온 노하우와 영업비밀 등이 담긴 자료까지 고스란히 유출됐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특허침해로 맞소송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인력 빼가기’ 과정에서 그 피해자는 LG화학이라는 데 대부분 공감한다. 그런데도 SK이노베이션이 ‘특허침해’라는 코스프레로 ‘피해자 코스프레’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우리나라 배터리 경쟁력은 나쁘지 않다. SNE리서치 자료를 보면 2019년 9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LG화학이 10.7%로 전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SDI가 3.8%로 6위, SK이노베이션은 1.5%로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LG화학은 우리나라 배터리 시장을 키워온 중심기업이다. 1995년부터 리튬이온배터리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원통형 리튬이온배터리 양산에 성공했다. 기술개발에 투자한 만큼 LG화학은 관련 특허 수도 매우 많다. LG화학 측은 관련 특허가 1만6685여 건으로 SK이노베이션 특허 수 1135건의 14배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연구개발(R&D) 규모도 LG화학은 지난해 전지 분야 3000억 원을 포함해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 같은 LG화학의 오래된 배터리 경쟁력과 기술력을 후발업체인 SK이노베이션이 야금야금 훔쳐갔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업계 도덕성은 물론이고 국내 업체 사이 불협화음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금의 행태는 ‘동반쇠퇴’의 지름길이다. 무한 경쟁 시대에 국내 업체 사이 ‘이전투구’는 지양해야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략은 ‘짧은 전략’에는 먹힐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면 ‘우리도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진행할 게 아니라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게 상식적이다. 반복하지 않는 게 도리이다.

이참에 영업비밀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도 가늠해 봐야 한다. 여전히 우리나라 법률체계에서는 ‘영업비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SK이노베이션의 ‘인력 빼가기’ 모습을 두고 “어떻게 진행됐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영업비밀과 전략이 노출됐는지, 또 법적으로 어디까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판가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터리는 과학이다. 배터리 산업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 분야는 권력만을 잡기 위해 자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단식하고, 자처해서 칼 맞고. 국민은 모두 아는데 자신만 모른 채 ‘나도 피해자’라는 의상 놀이를 감히(?) 즐긴다. 배터리는 다르다. 과학은 정직하고 객관적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의상 놀이를 할 게 아니라 흰 가운을 입고 과학적이고 효율적 놀이에 나서야 한다. ‘과학한다’는 사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몰염치 정치 놀이’와 같아서야 되겠는가.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앞선 연구는 존중하고 내 연구를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게 과학 놀이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건전한 배터리 경쟁력과 생태계를 위해서도 과학적이고 효율적 자세가 필요하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추고 청출어람의 ‘과학 놀이’에 나서기를 주문해 본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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