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vs SK 배터리 이슈②] 고래 싸움에 중국업체만 반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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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vs SK 배터리 이슈②] 고래 싸움에 중국업체만 반사이익?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9.11.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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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TC, LG화학 손들어 …SK이노베이션 당혹

'제 2의 반도체' '차세대 먹거리' 시장을 두고 전 세계 경쟁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배터리 시장'이다. 배터리는 21세기 가장 쓸모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전기 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등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제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배터리 경쟁력은 나쁘지 않다.

기업체 간 경쟁은 자연스럽다. 이 과정에서 업계 상식을 넘어서는 ‘인력 빼가기’가 정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인력 수십 명을 한꺼번에 스카우트하는 ‘배터리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전 직장에 있었을 때의 ‘노하우+기술력’을 직접 파일로 제출하라는 상식 밖의 요구까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쟁업체가 뛰어난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순 없다. 그 과정에서 업계 상식과 상도의를 넘어서는 것은 법적 문제를 떠나 ‘동반쇠퇴’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일련의 ‘인력 빼가기’ 과정은 우리나라 전체 배터리 업계의 건전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점은 없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세 차례 살펴본다. [편집자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은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LG화학이 ‘영업비밀 침해’로 당긴 불씨가 ‘특허침해’로까지 번졌다. 7개월 가까이 이어져 온 싸움에서 유리한 지점을 선점한 건 LG화학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려달라는 LG화학의 요청에 찬성하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뼈아픈 소식이다.

27일 ITC는 OUII가 지난 15일 “LG화학의 조기 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을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인멸 등을 벌였다고 주장하며 조기패소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ITC 산하 조직인 OUII는 공공 이익을 대변하는 독립적 기관으로서 소송 안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곳이다.

두 회사의 소송전은 국내외에서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이번 미국 ITC 의견이 조기 패소 판정으로 이어질 경우 국내 재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소송전은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측면도 없지 않다. 기업 신뢰도 하락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승소 여부를 떠나 격화하는 두 기업의 소송전을 보는 일부 시선은 곱지 않다. 차세대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두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기업들이 국내도 아닌 국외에서 다투게 되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다. 총수와의 대화나 합의로 ‘좋게 좋게’ 마무리하자는 분위기도 읽힌다.

그 이면에 기업과의 신뢰와 정당한 경쟁 체제 확립 없이는 앞으로 양사 소송전과 같은 일들이 더 잦아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평생직장의 신화는 깨진 지 이미 오래인 데다 심화하는 경쟁 체재에서 기업 간 인재 영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양측 모두 ‘승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논평 속에서도 이번 소송전을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월부터 7개월째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월부터 7개월째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美 ITC, LG화학 손들어 …SK이노베이션 당혹

LG화학은 이달 초 “SK이노베이션이 광범위한 증거인멸과 법정 모독 행위 등을 벌였다”며 조기 패소판결 등 강도 높은 제재를 내려달라고 미 ITC에 요청한 바 있다. ITC는 증거개시절차 과정에서 위법사유가 발견되면 추가재판 없이 원고 측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판결을 내린다.

OUII는 LG화학이 제시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 정황을 인정했다. OUII는 “SK가 증거를 훼손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며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이런 행위들 중 일부는 고의성이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보였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측이 쟁점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소송 전 과정에 성실하고 당당하게 대응하고 있어 증거인멸 등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지난 4월부터 7개월째 국내도 아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굵직한 문제들을 다투는 이유는 뭘까. ‘증거개시 절차(Discovery)’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적용 때문이다. 증거개시 절차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제도다. 가해자가 의도적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했을 때 피해자가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모두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다.

영업비밀 침해는 한국법원에서 인정받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반면, 미국 법원에서는 상당한 양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데다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면 잠재적 손해 금액까지 받아낼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인력 빼가기’로 기술을 탈취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LG화학에게는 실질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카드다.

◆원천기술 기준 확립할 선례 될까

양사의 소송은 우리나라 업계가 원천기술 문제를 앞으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될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확대되는 전기차 시장에서 일본, 중국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는 만큼 공정한 체제를 갖춰 경쟁력을 확보할 선례가 될 수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중국·일본과의 경쟁 체제에서 이기기 위해 문제를 덮고 가자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 얘기”라면서 “기업과 인력의 기밀 유출 행위가 있을 때 엄격히 처리하는 선례를 만든다면 지적 재산의 범위를 정의하거나 범죄 행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많이 축적한 게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에는 남을 따라해 왔기 때문에 경험이 많이 없었던 것”이라며 “기업이 개인의 직업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지켜야 할 영업 비밀들을 관리하는 역량도 앞으로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자유로운 이직 시장의 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 그런 만큼 기술유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법령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전문 인력의 경험과 능력은 자유롭게 공유하면서도 오랜 기간 쌓아온 기업의 노하우와 기술력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직원 입장에서는 이직 선택권 보장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현재 소송전은 논의의 초점이 '인력 빼가기'와 기업의 영업 비밀에 쏠려 있는 느낌이 든다”며 “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싶은 개인의 바람을 더 잘 보장해 줄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인력이 돌고 도는 흐름은 배터리 업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며 “직원 입장에서는 연봉 몇 천만원을 올릴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기업 비밀은 지키면서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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