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vs SK 배터리 이슈①] 상처만 남긴 인력 빼가기, 이대로는 동반성장 아닌 동반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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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vs SK 배터리 이슈①] 상처만 남긴 인력 빼가기, 이대로는 동반성장 아닌 동반쇠퇴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9.11.21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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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이어온 양사 소송전, '영업비밀 침해'가 핵심 쟁점
LG화학 "인력 빼가기" vs SK이노베이션 "경력 채용"
국내 업계끼리 무한 경쟁… 동반쇠퇴하는 길 될수도

'제 2의 반도체' '차세대 먹거리' 시장을 두고 전 세계 경쟁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배터리 시장'이다. 배터리는 21세기 가장 쓸모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전기 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등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제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배터리 경쟁력은 나쁘지 않다.

기업체 간 경쟁은 자연스럽다. 이 과정에서 업계 상식을 넘어서는 ‘인력 빼가기’가 정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인력 수십 명을 한꺼번에 스카우트하는 ‘배터리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전 직장에 있었을 때의 ‘노하우+기술력’을 직접 파일로 제출하라는 상식 밖의 요구까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쟁업체가 뛰어난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순 없다. 그 과정에서 업계 상식과 상도의를 넘어서는 것은 법적 문제를 떠나 ‘동반쇠퇴’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일련의 ‘인력 빼가기’ 과정은 우리나라 전체 배터리 업계의 건전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점은 없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세 차례 살펴본다. [편집자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이 7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그 시작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LG화학에 대한 '인력 빼가기'였다. 두 회사는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침해’를 놓고 국내를 넘어 미국에서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물밑에서 한 번 만난 뒤로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상황이다. 전통의 강자로서 확립한 '30년 배터리'에 대한 LG화학 기술 강점들을 SK이노베이션이 불과 3년 만에 빼갔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30일 LG화학이 미국 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76명의 핵심 인력을 빼가는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고스란히 유출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전의 불씨를 지난해 11월 벌어진 폭스바겐의 58조 원 규모 배터리 수주전으로 보고 있다. LG화학이 주요 고객 중 하나인 폭스바겐 시장을 SK이노베이션에 내주게 되면서 더는 문제를 두고 볼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는 시각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화학 “SK의 과도한 인력 빼가기에 상식밖 채용 문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구체적이고 상당한 범죄 혐의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남겼다는 입장이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이 경력 직원 채용 과정에서 악의적 이력서 양식으로 연구 프로젝트명, 참여 인원 이름, 프로젝트 리더 이름, 성취도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면접 과정에서는 LG화학의 세부 기술 내용이 기재된 발표자료 등을 토대로 지원자가 수행했던 주요 프로젝트 내용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SK이노베이션의 전문 인력 다수가 면접관으로 참석해 이러한 발표를 듣고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게 LG화학 측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 지원자들이 LG화학 시스템에 접속해 수 백여 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열람·인쇄하고 다운로드한 게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LG화학 출신 지원자들만 SK그룹에서 운영하는 워커힐 호텔에서 면접을 진행하거나 면접 시간을 저녁이나 주말로 배정해 LG화학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서는 법정에서 충분히 시비가 가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 측에서 충분한 보상이나 사과를 전제로 한다면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SK 측은 문제될 게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필요한 일을 했다는 주장이다. 입사 지원자들이 낸 자료는 자신들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핵심기술 유출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전 직장 정보 활용금지’ 서약서를 두 번에 걸쳐 받고 있고, 위반했을 때 채용 취소 등의 규정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채용 취소가 실제로 있었는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 ‘동반쇠퇴’는 피해야 한다

소송전은 확전 양상이다. LG화학이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시작하자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LG화학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8월에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특허침해 소송을 걸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LG화학 미국법인을 미국 ITC와 연방법원에 각각 제소했다. 심지어 LG화학의 배터리 셀을 공급받은 LG전자까지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LG화학 전문인력을 빼가고 그 과정에서 'LG화학 영업비밀'까지 면접 과정에서 성토하도록 한 SK이노베이션은 "면접과정은 정당했다"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치부하고 맞소송으로 나선 모양새다. 

이런 흐름은 양사 최고경영진들이 지난달 9월 16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뒤에도 끊기지 않았다. 서로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바로 다음 날 경찰이 기술 유출 혐의로 고소된 SK이노베이션 본사와 대덕기술원, 충남 서산 배터리공장을 압수수색하면서 감정의 골만 더 깊어졌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것은 그만큼 신뢰할 만한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후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법인(SK Battery America)을 특허침해로 맞제소했다.

LG화학은 지난 11월 14일에는 소송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광범위한 증거인멸과 법정 모독 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LG화학은 미 ITC에 보낸 요청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증거인멸 행위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법정모독 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지난 16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광범위한 증거인멸 사실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자료에 손을 대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맞받아쳤다.  인력 빼가기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현상이다. 세계 배터리 시장규모가 2017년 37조 원에서 2025년 18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 초기 시장 선점 과정에서 인재를 확보해 기술력 향상을 이뤄내려는 경쟁은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다만, 국내 업계끼리 과한 경쟁은 결국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인력이 급격히 필요해지면서 인력 빼가기 경쟁이 심화한 곳”이라며 “글로벌 경쟁 국면에서 국내 기업끼리 뭉쳐도 모자랄 시점에 서로 인력을 빼가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업종 특성상 한 다리 건너면 결국 서로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는데, 무분별하게 인력을 빼가는 것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상대방 흠집을 내면 2~3배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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