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세포 만들 수 있다
상태바
인공 세포 만들 수 있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19.11.13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연구팀, 항상성 유지하는 '생체모사 시스템' 개발
에너지원인 트리클로로아세트산이 공급돼 만들어진 트립토판-쿠커비투릴 복합체 결정.[사진=IBS]
에너지원인 트리클로로아세트산이 공급돼 만들어진 트립토판-쿠커비투릴 복합체 결정.[사진=IBS]

인공 세포 구현을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 국내 연구팀이 세포처럼 끊임없이 에너지를 받고 쓰는 초분자를 개발했다. 이 초분자는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어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생겼다. 밥을 먹고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상식이다. 일하고, 움직이고, 숨을 쉬는 일에 세포가 흡수한 영양소를 써버리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생명현상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세포 단위에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항상성’을 지킨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김기문 단장 연구팀은 호박 모양의 분자인 쿠커비투릴을 이용해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에너지를 받고 쓰며 항상성을 유지하는 생체모사 시스템을 내놓았다. 다양한 생체모사 기능성 재료 개발은 물론 인공 세포 구현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쿠커비투릴은 호박 모양의 고리형 화합물로 호박의 학명 ‘쿠커비타세’를 따서 이름 붙였다. 글리콜우릴(Glycoluril) 분자가 메틸렌으로 연결돼 만들어지는 화합물로 이번 연구에서는 8개의 글리콜우릴이 연결된 ‘쿠커비투릴[8]’이 사용됐다.

단순한 단세포부터 복잡한 식물과 동물까지 모든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물질대사를 진행한다. 세포는 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세포 내 기관을 이용해 밖으로 배출하며 항상성을 유지한다. 초분자 화학(수소결합, 정전기 상호작용 등 분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약한 힘으로 생성되는 2개 이상의 분자 집합체. 초분자를 연구하는 화학의 한 분야) 분야에서는 이런 생명체만의 특별한 활동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포와 같은 항상성 유지 시스템을 화학적으로 구현하려는 생체모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모사체는 세포와 달리 생성된 부산물이 내부에 축적돼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대사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자발적으로 제거되는 시스템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개발된 시스템에는 연구단의 전문 분야인 쿠커비투릴이 사용됐다. 쿠커비투릴은 아미노산 유도체의 하나인 트립토판 유도체를 ‘손님’으로 인식하고 내부의 빈 공간으로 불러와 결합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주인-손님 복합체’라고 한다. 특히 이 복합체는 산성 조건에서 자기 조립해 능면체 모양의 결정을 형성한다.

연구팀은 이 복합체에 산성 물질인 트리클로로아세트산을 에너지원으로 공급했다. 트리클로로아세트산은 탈탄산 반응(카르복시기를 가진 유기화합물에서 이산화탄소를 탈리하는 반응. 생체에서 탄소화합물을 탄산가스로 분해해 배출하는 반응)에 의해 이산화탄소와 클로로포름으로 분해된다. 기체인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끓는점이 낮은 클로로포름은 자연스럽게 용액에서 제거된다. 부산물을 제거하는 별도의 장치 없이도 스스로 주입된 에너지원을 소모하는 시스템이 완성된 것이다.

공동교신저자인 백강균 연구위원은 “주인-손님 복합체 결정을 살아있는 세포, 트리클로로아세트산을 에너지원, 탈탄산 반응을 대사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부산물을 제거하는 장치가 필요했던 기존 모사 시스템과 달리 별도 장치 없이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모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문 단장은 “‘생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라는 호기심에 화학적 대답을 찾고자 이 연구가 시작됐다”며 “앞으로 연료를 공급하는 동안에만 기능성을 나타내는 기능성 재료뿐 아니라 인공세포를 구현하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독일응용화학회지(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 IF 12.257)’ 10월 25일 자 온라인판(논문명: Fuel-Driven Transient Crystallization of a Cucurbit[8]uril-Based Host-Guest Complex)에 속보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