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 미국 트럼프에 굴복...33년 만에 WTO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 혜택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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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부, 미국 트럼프에 굴복...33년 만에 WTO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 혜택 포기했다
  • 박근우 기자
  • 승인 2019.10.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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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부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굴복해 33년 만에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했다.

정부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유지해왔던 농업 분야에서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지위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향후 미래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향후 진행될 농업분야를 포함한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개도국으로서의 특혜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비교적 발전한 국가들은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회의 후 "우리 정부는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에, 우리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flexibility)을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하에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 발표를 앞두고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했다. [사진 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이번 의사결정 과정에서 쌀 등 민감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forego)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not seek)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 새로운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는 변동 없이 유지할 수 있다"며 "미래 협상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가입시 개도국임을 주장했지만,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 외에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으면서 관세 및 보조금 감축률과 이행 기간 등에서 선진국에 비해 혜택을 받아왔다.

정부의 이번 결정엔 미국의 통상 압박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고집할 경우, 미ㆍ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특혜’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중국처럼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자동차 관세 등을 포함한 통상 문제,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을 고려하면 미국과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관측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다른 현안에서 우호적인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다.

농업인단체가 지난 22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정부와 농업인단체 간 간담회에서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 피켓을 들고 정부에 농업인단체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농민단체의 강력 반발이 예상된다. 농민단체는 농업 부문 보조금 삭감 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날도 농민단체는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농민단체의 주요 요구 사항은 ▶공익형 직불제 도입 ▶농업 예산 확대(전체 예산의 4%) ▶농가 소득 보장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 ▶통상ㆍ식량 주권 실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민ㆍ관 합동 특별위원회 구성 등이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장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건 국산 먹거리를 통째로 미국에 바치겠다는 얘기”라며 “300만 농업인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개도국 포기와 상관없이 쌀 등 일부 농산물에는 예외적인 보호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수입 쌀에 대한 513% 관세도 유지할 방침이다. 보조금 역시 WTO에서 허용하는 품목 불특정 최소허용 보조 등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형 직불제(작물ㆍ가격 상관없이 면적당 일정액 지급)’ 등 농민 지원에 최대한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보상 범위와 방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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