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다] 백금 아닌 ‘값싼 촉매’로 수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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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품다] 백금 아닌 ‘값싼 촉매’로 수소 만든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19.09.2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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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팀, 관련 기술 개발
물에 있는 수소 원자가 촉매 표면에 흡착해 생성반응을 일으켜 수소분자가 돼 탈착되는 과정.[사진=유니스트]
물에 있는 수소 원자가 촉매 표면에 흡착해 생성반응을 일으켜 수소분자가 돼 탈착되는 과정.[사진=유니스트]

값싼 촉매로 수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국내 연구팀이 이른바 ‘전자껍질’을 조절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물질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다. 그 전자가 있는 ‘전자껍질’을 원자 궤도 또는 원자 오비탈이라 부른다. 양자역학적 개념으로 전자의 분포 확률을 의미한다.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얻는 반응에는 ‘촉매’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효율이 좋은 백금을 썼다.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백금을 대체할 물질이 꾸준히 개발되는 가운데 ‘원자 구조를 조절해 촉매 효율을 높인 연구’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유니스트(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백종범 교수팀은 23일 중국 연구팀과 공동으로 ‘이리듐(Ir)-질소(N)-탄소(C)’로 이뤄진 수소 발생 촉매를 합성했다. 이 촉매는 수소 원자를 당기고 밀어내는 두 작용을 적절히 해냈다. 백금보다 낮은 과전압(overpotential)에서 수소 발생 반응이 일어난다. 효율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촉매이다.

수소 발생 반응에서 촉매는 두 조건을 맞춰야 한다. 먼저 물속에 있는 수소 원자가 촉매에 잘 붙어야 한다. 수소 원자가 두 개 모여 분자가 되면 촉매표면에서 잘 떼져야(탈착)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소 발생 촉매의 수소 흡착(adsorption)과 탈착(desorption) 성질은 서로 반비례한다. 흡착과 탈착 반응 사이에 적절한 조율, 즉 ‘밀당’을 잘하는 물질이 좋은 촉매다.

연구팀은 원자 내 전자들의 모양과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범밀도함수 이론을 활용한 계산을 통해 질소와 탄소로 이리듐 흡착과 탈착 에너지를 조절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리듐은 백금을 대체할 차세대 촉매로 꼽히는 물질 중 하나이다. 수소 발생 반응을 위한 수소 원자를 흡작하는 부분에 어려움이 있었다. 수소 원자가 이리듐 표면에 붙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높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리듐의 흡착 에너지를 낮추는 데 ‘질소와 탄소로 이리듐 원자의 전자껍질(Orbital)을 조절’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리듐 주변에 전자를 좋아하는 성질이 큰 질소와 탄소를 적절히 배치해 수소 원자를 당기는 힘을 키워준 것이다. 줄다리기할 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당기는 힘이 더 커지는 원리와 같다.

연구팀은 이 내용을 원자 내 전자들의 모양과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범밀도함수 이론’으로 계산했다. 이론적 계산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가운데 공 모양의 빈 공간을 갖는 ‘이리듐-질소-탄소(IrHNC)’ 촉매를 합성했다. 공 모양의 플라스틱(폴리스타이렌) 입자 표면에 세 원소를 입힌 후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방식을 썼는데 속 빈 원형의 입자 표면에 이리듐과 질소, 탄소가 균일하게 분포됐다.

이 촉매의 전기화학적 수소 발생 성능을 산성(acid) 환경에서 확인한 결과, 백금 촉매와 순수한 이리듐 나노입자보다 훨씬 뛰어났다. 열분석 장비로 살펴본 결과 귀금속인 이리듐 함량도 7% 정도로 확인됐다. 이리듐 역시 귀금속인데 소량만 사용하면서 값싼 탄소와 질소와 섞어 고효율 촉매를 만들어낸 것이다.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한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펑 리(Feng Li) 박사는 “좋은 성능만 쫓아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방식에서 ‘전자껍질을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촉매 효율을 높인 연구”라며 “이번에 쓰인 방식을 활용하면 다른 금속 기반의 촉매를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백종범 교수는 “질소나 탄소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고가인 이리듐을 아주 소량만 사용해 고효율 촉매 개발에 성공했다”며 “상용화될 경우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9월 6일자(논문명: Balancing hydrogen adsorption/desorption by orbital modulation for efficient hydrogen evolution catalysis)에 실렸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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