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세계적 수준의 가스터빈, 국산화 성공' 두산중공업 최종조립 현장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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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세계적 수준의 가스터빈, 국산화 성공' 두산중공업 최종조립 현장 가다 
  • 양도웅 기자
  • 승인 2019.09.2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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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18일 창원공장서 언론에 가스터빈 최종조립 현장 공개
6년 만에 가스터빈 완성 앞둬... "우리나라 모든 지혜 모아 만들었다"
세계서 5번째로 가스터빈 제작 기술 보유... 2차대전 미 참전국 중 처음
"후발주자로 장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에 육박하는 효율·기술력 갖춰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산만. [사진 양도웅 기자]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산만. [사진 양도웅 기자]

18일 오전 10시경, 마산만이 내려다 보이는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을 찾았다. 

두산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 조립을 목격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013년 기술 개발을 시작했으니, 약 6년 만의 '눈부신 성과'다.

눈부신 성과···. 사실 이 네이밍(명명命名)은 가스터빈을 알고 나서야 뒤늦게 붙인 찬사다. 가스터빈을 모르면, 우리가 보는 장면의 의미도 알 수 없다.

지독히도 개발하기 어려운 게 가스터빈이다. 2013년 국책과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을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코웃음을 치는 곳도 있었으니 말이다. 

18일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최종조립을 기다리는 가스터빈. [사진 두산중공업]
18일 두산중공업 직원들이 제작한 가스터빈을 최종조립하기에 앞서 점검하는 모습. [사진 두산중공업]

◆ 가스터빈 제작... 세계 2차대전 때부터 '전투기 좀 몰아봤다'는 나라들도 범접하기 힘들어

현대사회의 에너지는 전기다. 

전기를 어떻게 쉽고 빠르게 많이, 그리고 (요즘은 여기에 추가로)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전기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계속 돌려야 한다. 무엇으로 돌리느냐에 따라, 스팀터빈에 의한 발전과 가스터빈에 의한 발전으로 나뉜다. 

가령, 여전히 발전 비중 1위(2018년 기준)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은 석탄으로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이때 발생하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이 증기로 돌아가는 터빈이 '스팀터빈'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석탄화력발전은 미세먼지의 주범이다(우리에겐 중국도 있지만). LNG(액화천연가스)발전소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 석탄화력발전에 비해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을 3분의 1, PM 2.5의 초미세먼지를 8분의 1 배출한다. 

LNG발전소는 압축된 공기와 천연가스를 혼합해 폭발을 일으킨 뒤, 이때 발생하는 배기가스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이 배기가스로 돌아가는 터빈이 가스터빈이다.

4만여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가스터빈은 스팀터빈과 달리 흡입-압축-연소-배기 4단계 과정이 하나의 구동축에서 이뤄진다. 

머리카락 한 올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도 용납돼선 안 된다. 발생한 배기가스 온도가 1500도(용광로 온도)를 넘기 때문에, 이를 견디며 움직이는 '초내열 합금'의 터빈 날개(블레이드)를 제작해야 한다. 가스터빈이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다.

현재 미국(GE)과 독일(지멘스), 일본(MHPS), 이탈리아(안살도 에네르기아)만이 제작할 수 있을 정도다. 

소위 세계 2차대전 때부터 '전투기(가스터빈의 기반인 제트엔진으로 움직이는) 좀 몰아봤다'는 나라들도 쉽게 만들지 못하는 게 가스터빈이다.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 개발을 목전에 두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로 가스터빈 제작 기술을 보유한 국가 반열에 올랐다. [사진 두산중공업]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 개발을 목전에 두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로 가스터빈 제작 기술을 보유한 국가 반열에 올랐다. [사진 두산중공업]

◆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우리나라의 모든 지혜를 모아 이 자리까지 온 것"... 2026년 세계 시장 점유율 7% 목표

이처럼 어려운 가스터빈 제작을 두산중공업이 약 6년간 매진한 끝에 눈앞에 두고 있다(공정률 95%). 

18일 가스터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두산중공업 목진원 부사장은 "원천 기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며 "가스터빈 기술은 우리 회사가 마지막으로 원했던, 가장 고난도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제작으로 모든 발전기자재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이어 "1조원의 예산과 21개의 국내 대학, 4개의 정부 출연 연구소, 13개의 중소·중견기업 등이 우리와 함께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며 "우리나라의 모든 지혜를 모아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후발주자로서의 경쟁력이다. 선두업체들보다 앞선 면이 없다면, 그래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지혜'가 투입된 만큼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두산중공업은 "자신 있다"고 말한다. 

두산중공업 이광열 상무는 "후발주자라도 장점이 있다"며 "가스터빈 운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게 '유지보수'인데, 우리는 가스터빈을 열어보지 않고도 관리할 수 있는 AI·빅데이터 기반의 솔루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가스터빈 사업에서 고객사들의 비용 부담이 큰 영역이 '유지보수'다. 두산중공업은 고객사들의 이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기술을 확보했다. 기존 경쟁사들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 이광열 상무는 "첫 번째 모델인 S1은 270MW(메가와트)급으로 경쟁사 동급 모델과 비교했을 때 효율 면에서 '월드 베스트'"라며 "현재 병행 개발 중인 380MW급 S2모델의 효율은 62%로 국내 도입된 가스터빈 중 63%는 없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은 H와 H+ 사이에 위치한다. [자료 두산중공업]

가스터빈을 사용해 전기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가스터빈만 사용하는 단순발전, 다른 하나는 가스터빈과 스팀터빈을 함께 사용하는 복합발전(열병합발전)이다. 

복합발전소(열병합발전소)에선 가스터빈을 돌리고 남은 배기가스를 활용해 배열회수보일러를 돌리고(물을 끓이고), 이때 발생하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추가 생산한다. 

이에 가스터빈 효율은 대개 복합발전에 사용했을 경우로 상정해 비교하는데,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은 60%를 상회한다. 이는 5단계로 나뉜 가스터빈 효율 등급에서 첫 번째 등급(H+)과 두 번째 등급(H) 사이에 위치한다. 세계 시장서 겨뤄볼 만한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두산중공업이 최초로 가스터빈을 공급하는 곳도 김포열병합발전소다. 두산중공업은 연내 사내 성능시험을 시작해, 2021년 출하 및 설치, 시운전을 거쳐 상업운전할 예정이다. 김포열병합발전소 가동 시점은 2023년이다.

두산중공업은 합산 점유율 약 95%로 GE와 지멘스, MHPS가 독과점을 이루고 있는 세계 가스터빈 시장에서 2026년까지 점유율 7%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장서 만난 두산중공업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 이유다.  

이번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 개발로 230여개의 가스터빈 공급망이 형성돼, 두산중공업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료 두산중공업]
이번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 개발로 230여개의 가스터빈 공급망이 형성돼, 두산중공업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료 두산중공업]

◆ "처음엔 원천 기술 확보 기업을 인수하려 했다"...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개발의 '막전막후'

사실 처음부터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 개발'이라는 지난(至難)한 길을 선택했던 건 아니다. 

목진원 부사장은 "최고난도의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 개발을 장담할 수 없어) 내부 개발이 아니라 회사를 인수해 개발하려고 했다"며 "이탈리아의 안살도 에네르기아(안살도)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이탈리아 정부에서 전략적 자산을 다른 나라에 넘길 수 없다고 결정해 마지막에 딜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목 부사장은 "그걸 계기로 우리가 대형 발전용 가스터빈을 갖는 유일한 방법은 독자 개발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2013년 10월 당시 기사들을 보면, 두산중공업은 안살도의 최대주주인 핀메카니카가 재정난 타개를 위해 안살도 지분 매각을 추진하자 복합발전소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안살도 지분 인수전엔 우리나라의 삼성테크윈과 독일 지멘스 등도 참여했으나, 두산중공업만이 단독 협상했다. 

20여년간(당시 기준) 자체 기술이 없어 MHPS 등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복합발전소를 지은 두산중공업의 설움을 씻겨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협상은 '마지막 도장을 찍기 전' 엎어졌다.

18일 이동하는 버스에서 기자 옆에 앉은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가스터빈이 전략 기술일 뿐 아니라, 이 기술을 보유한 안살도가 이탈리아에서 '국민 기업'이라 불릴 정도로 국민들이 아끼는 기업이라는 점도 (딜 무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가령 포스코를 해외에 판다고 하면,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이 동의하겠냐"고 덧붙였다. 

2013년 무산된 안살도 에네르기아 인수가 두산중공업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2013년 무산된 안살도 에네르기아 인수가 두산중공업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결국, 2013년 안살도의 최종 인수자는 이탈리아 은행인 카사 데포지티(CDP)로 낙점됐고, 당시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인수 막바지에 이런 일이 생겨 무척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는? 

안살도 인수 협상이 무산된  지 꼬박 6년 뒤,  두산중공업 관계자들은 자부심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자신들이 그렇게 갖고자 했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조립 과정을 기자들에게 선보이는 결과를 냈다.  

갖은 고생 끝에 만든 가스터빈과 관련 설비가 의도치 않게 외부로 노출될까, "사진 촬영하지 말아주실 것을 당부한다"고 수차례 밝히기도 하면서. 기자의 스마트폰 카메라엔 '찰영 금지'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이제 첫 발을 뗀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도 우려 섞인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성능시험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때마다 외부에서 응원보다 채찍이 날아들까 두렵다. 많은 응원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맞다.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현장엔 '박수'와 '격려'가 필요하다, 다른 무엇보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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