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공구거리 르포②] 뮌헨호프·관광객에 둘러싸인 세운3구역, "도쿄 아키하바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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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공구거리 르포②] 뮌헨호프·관광객에 둘러싸인 세운3구역, "도쿄 아키하바라처럼"
  • 양도웅 기자
  • 승인 2019.09.02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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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이튿날, '도심 제조업의 심장' 청계천 공구거리 찾아
재개발 보류된 세운 3구역 베어링업체 대표, 서울시 '공원 조성 계획'에 비판
"광화문광장, 시민들이 쓰나... 공원 만들면 시위밖에 더하지 않나"
"공구업체들 외지로 내보낼 이유 없어... 도쿄의 아키하바라처럼 만들어야"

지난달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인근의 청계천 공구거리를 돌아다녔다.

전날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서 제외키로 한 결정이, '도심 제조업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곳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탁상에 앉아 '예상'한 것들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바빠, 그런 얘기 할 틈 없어" "문제없어, 됐어, 가" 숱한 거절 끝에 듣게 된 '청계천 토박이'들의 현실은 이랬다. 한·일 무역갈등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얘기를 1부와 2부로 나눠 전한다. 

[편집자주]

현재 재개발 작업이 중단된 세운 3-2·3구역. 여전히 물건을 나르는 근로자들로 부산하다. 오후 5시가 되면 근처 '뮌헨호프' '만선호프'서 '치맥'을 즐기려는 2030세대들로 붐비기도 한다. 

어렵사리 만난 '귀인'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5시경이었다.

"여기 사정을 더 알고 싶으면 건너편으로 가봐"라는 김준명(가명) 대표의 말을 듣고, 세운 3구역으로 향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인 세운 3구역은 총 7개 하위 구역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1·4·5구역은 지난해 말 철거됐고, 이 구역서 청계천과 고락(苦樂)을 함께 한 300여업체들도 보상을 받고 떠났다. 

나머지 2·3·6·7구역은 현재 재개발(철거) 작업이 중단된 상태. 서울시는 올해 말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세운상가를 포함한 이곳 생태계를 유지(개발)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1·4·5구역엔 아파트를 지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지만, 2·3·6·7구역은 어떤 식으로 결정될진 연말에 가봐야 안다. 전국에서 유명한 노포(老鋪) '을지면옥'과 '양미옥'이 이곳(3-2, 3구역)에 있다. 

양쪽에 물건을 실어나를 차량들이 줄지어 주차된 충무로를 건너, 세운 3-2구역과 3구역에 있는 공구업체들을 기웃거렸다. 업체들은 바빴고, 주문건을 확인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여러 번의 거절 때문인지 주눅 든 채 배회하다, 일하는 분 혼자 앉아 계신 '베어링'업체를 찾아 용기를 내 문을 열었다.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이 일대 도심전통 산업과 오래된 가게(노포) 보존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올해 말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은 세운3구역 내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을지면옥. [사진 연합뉴스]

◆ "공구업체들을 자꾸 외지로 보낼 게 아니라, 여기를 도쿄의 아키하바라처럼 만들면 안 되나?"

기자가 쭈뼛쭈뼛 '일본 수출규제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 궁금해 찾았는데, 재개발이 더 문제인 것 같더라' 등을 두서 없이 꺼내니, 베어링업체 이상민(가명) 대표는 앉을 자리를 내주며 재개발에 대해 말했다. 꽤나 구체적이었다. 

"(종합대책 나오는 시점) 12월까지 기다려 봐야죠. 최근 서울시에서 어떻게 바뀌길 원하냐는 여론조사했는데, 나는 그런 말했어요. 외국인들이 서울에 관광 오면, 서울에서 볼 게 많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여기를 도쿄의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처럼 만들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공구업체들을 외지로 계속 보낼 게 아니라, 서울시내서 외국인들이 관광도 하고 물건도 살 수 있게 지하 3-4층·지상 7-8층짜리 건물을 지어 물건도 팔고, 물건도 만들어서 팔게 해주면 어떻겠냐고."

이 대표는 종합공구상가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80년대에 청계천에 들어왔다. 40년 가까이 '기계의 꽃' 베어링을 떼와 팔았다. 베어링은 소위 움직이는 기계엔 모두 들어간다. 하다 못해, 호두과자 기계에도.

그는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청계천 (재)개발사업의 우여곡절을 몸소 겪었다. 그 과정서 '여기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가 일본의 최대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였다. 

일반적으로 국내서는 용산 전자상가가 '아키하바라'에 비교된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이곳이 아키하바라처럼 활성화하기 안성맞춤이라는 것. 

이 대표는 "이 주변에 호텔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특히, 건너편(을지로 13길, 충무로 11길)에 뮌헨호프·만선호프가  젊은이들에게 인기 끌면서 분위기도 좋아졌고. 관광객들이 저녁 먹고 뭐하겠어요. 여기서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하면, 이곳 업체들도 유지되고 좋지 않겠어요? 공무원들이 탁상에 앉아 무슨 생각하는지 기다려 봐야지"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대로, 뮌헨호프와 만선호프가 있는 을지로 13길과 충무로 11길은 요새 서울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다. 

기자가 첫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을 무렵, 오후 5시에 이미 뮌헨호프와 만선호프 자리엔 '틔나게 차려 입은'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공구업체들 중간중간에 자리잡고 떠나가라 웃고 떠드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이 대표의 자신감도 이런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주말엔 지하철 아래까지 젊은애들이 (뮌헨호프·만선호프서) 미팅하려고 줄서서 있어"라고 말했다. 

재개발지역인 세운 3구역 주변엔 요즘 서울에서 가장 '핫'한 뮌헨호프와 만선호프가 있다. 기자가 첫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오후 5시경에 뮌헨호프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사진 양도웅 기자]

◆ '가든 파이브 실패' 반복 않기 위해 서울시가 택한 건 공원?... "공원 생기면 시위나 더하지, 안 그래요?"

하지만 '현장과 탁상 간 거리'가 너무도 멀다는 게 이 대표와의 대화서도 확인됐다. 

이 대표는 최근 서울시가 이곳을 '공원'으로 추진하는 안을 제기했다며 황당해 했다. 40여분간의 인터뷰에서 그의 목소리가 가장 거칠어진 순간이었다. 

"여기를 녹지공간,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니, 공원 만들면 대체 뭐가 좋아요. 서울시청광장, 광화문광장을 솔직히 우리 시민들이 써요? 나도 시내에 있지만 시민들이 쓰냐는 말이죠. 시위나 더하지, 안 그래요? 탁상에 앉아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대표가 인터뷰서 여러 번 말한 건 '탁상'이었다. 좋은 의미로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서울시장이 '출세를 위해(대통령이 되기 위해)' 개발 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장들은 이슈를 하나 남겨 출세하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서 이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때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행하며, 일대 상인들의 이주 상가 목적으로 지은 '가든 파이브'를 언급했다. 

"많이 줄었지만 청계천엔 여전히 공장들이 있어요. 여기 공장서 기계를 만들려면 가까운 곳에서 부품이 공급돼야 하죠. 멀리 나갈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든파이브 만들어 내보냈고, 이쪽도 그쪽도 '완전히 실패'했죠."

[자료 연합뉴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에 들어설 주상복합시설 조감도. 세운 1·4·5구역에 들어설 것으로 전해진다. [자료 연합뉴스]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가든파이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힌다. 

올해 초 SH공사(서울시도시개발공사)가 서울시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구·철물·배관 등 산업용재 전문상가인 가든파이브 툴동의 공실률은 30% 웃돈다. 중대형 상가 평균 공실률이 10%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높은 분양가와 모호한 상권 구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대표는 "연말까지 기다려보고, 철거로 확정되면 구로 쪽(구로중앙유통단지)으로 가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거기는 인기가 많아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 일찌감치 수입처 다변화된 '기계의 꽃' 베어링 "일본 수출규제 영향 없어, 하지만..."

한편, 이 대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베어링 수급과 판매에 미친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계약 맺은 베어링업체에서 공문을 보내 왔어요. 화이트리스트서 한국이 배제돼도 이전과 동일한 수출통관 절차를 받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그리고 일본에서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부분 'Made in Germany'예요. 일본서도 들어오지만, 우리가 잘한 게, 일본과 독일 양쪽에서 다 들어와요. 가격도 비슷해요. 일본에서 금지시켜도 문제 없어요."

이 대표가 말한 "우리"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건 정부가 그렇게 한 건가요?'라고 묻자 이 대표는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 아니, 자연스럽게 시장이 그렇게 형성된 거예요"라고 말했다.

움직이는 기계엔 꼭 들어가는 '기계의 꽃' 베어링. [사진 연합뉴스]
움직이는 기계엔 꼭 들어가는 '기계의 꽃' 베어링. [사진 연합뉴스]

그는 오히려 베어링 산업을 도외시한 역대 정부의 선택을 아쉬워 했다.

"원래 우리나라(한화기계)에서도 베어링을 만들었어요.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니 당연하죠. 그런데 IMF때 힘들어지자 독일 FAG(현재 셰플러코리아)에 팔았어요.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되사오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FAG에서 너무 높은 금액을 부르자 없던 일로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리해서라도 사는 게 나았어요."

이 대표가 보여준 FAG가 만든 베어링은 과거 한화기계에서 생산한 베어링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바뀐 건 베어링 포장지에 적힌 업체명뿐이었다. FAG는 한화기계의 창원과 전주공장을 그대로 운영 중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에 외국 베어링업체들의 공장이 있어요.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영향은 없는 거죠. 그런데 이 공장이 번 돈은 다 독일, 일본으로 빠져나가요.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엔 베어링 산업이 국가기간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죠"라고 토로했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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