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제조업의 심장' 청계천 공구거리 현장 찾아... 일본 수출규제 영향 물어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냐 "공장이 없잖아, 공장이"... 제조업의 '탈한국'이 문제
지난달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인근의 청계천 공구거리를 돌아다녔다.
전날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서 제외키로 한 결정이, '도심 제조업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곳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탁상에 앉아 '예상'한 것들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바빠, 그런 얘기 할 틈 없어" "문제없어, 됐어, 가" 숱한 거절 끝에 듣게 된 '청계천 토박이'들의 현실은 이랬다. 한·일 무역갈등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얘기를 1부와 2부로 나눠 전한다.
[편집자주]
"들어와요, 들어와."
손에 쥔 한움큼의 명함이 반으로 줄어들 때쯤이었다. '그냥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한 종합공구업체 김(가명) 대표가 손짓을 했다.
김 대표는 '청계천 재개발 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빨간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10번이 넘는 거절 끝에 찾아온 '환대'였다. 기자가 연신 감사하다고 했더니, ㄱ대표가 말했다.
"청계천 100군데 다니면 100군데 다 그럴 거예요. 욕하는 사람밖에 없어요. 대한민국은 땅이 좁아서 다 땅 가지고 돈 먹고 돈 먹기예요. 지금 굉장히 심각해. 장사가 안 되니까. 여기가 도매집들이 대부분이잖아? 예전에는 박스 단위, 통 단위로 나갔어요. 근데 요새는 낱개 하나를 주문해도 그거라도 가져다 줘야 해. 그리고 직원이 나가면 쓰질 않아. 더 뽑질 않아. 인건비 때문에. 지금 상황이 그래요. 심각해요. 더군다나 여기, 앞에 때려 때려 부쉈잖우."
그가 지목한 '때려 부순 곳'은 지난해 12월 철거된 세운 3-1·4·5구역이었다. 세 구역이 철거되면서 이곳에서 평균 30년 이상 공구를 팔고 만들던 300여개 업체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다른 구역의 재개발은 올해 12월 말까지 보류된 상태다.
"저기 300군데가 떠났어요. 조그마한 기업체들 같지만,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들 처우보다 나아요, 저기가. 여기 중구에서 세금 걷어가는 것도 꽤 많았을 텐데, 중구는 고민이 많을 거야. 기업체들이 있으면 세금이라도 좀 걷을 수 있으니까. 지금은 힘들어요. 청계천뿐 아니라, 대구 부산에 전화해도 다 힘들다 그래."
청계천을 떠난 300여 업체서 일하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보상을 받았다지만, 청계천에 미련이 남은 몇몇은 다시 청계천 인근 상점에 세를 얻어 돌아왔고, 몇몇은 구로중앙유통단지로 들어갔고, 몇몇은 일에서 아예 손을 뗐다. 김 대표는 "난 올해까지만 지켜볼 심산이야, 해보고 안 되면 다 반품해야지"라고 했다.
김 대표는 청계천에서 35년 가까이 공구를 팔았다. 20대 초에 들어왔다. "그땐 전라도 형님들이 많았어. 지역 감정이 심할 때라 말 잘못하면 공구가 머리 위로 떨어졌을 때지"라고 회고 했다. 과거엔 대구와 부산, 광주 등을 돌아다니며 공구를 팔았다고도 했다. "그땐 없어서 못 팔 때"였지라고. 1990년대, 2000년대 후반 이야기다. 길게는 20년, 짧게는 10년 된 얘기.
그는 그때보다 수입이 반토막으로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전보다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미련'이라고 치부하기 힘든 지점이다.
'해외 직구' '온라인 직구' 등이 생겨 청계천 공구업체들도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지만, 오프라인이 갖는 매력은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저 전보다 좀 약해져서 그렇지···.
기자가 머문 50분간 근처 다른 공구업체의 대표가 찾아와 한 물건의 재고가 있는지 묻기도 했다. 김 대표는 문의한 공구를 찾다가 모두 팔렸다는 걸 알자, 무척 아쉬워했다. "어휴, 주문을 미리 해둘 걸" "괜찮아, 괜찮아" 그는 혼잣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 "공장이 없잖아, 공장이. 그게 문제야"
◆ "뭐 하나 바꾸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윗 대가리들은 그걸 몰라"
청계천 공구거리가 과거보다 어려워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앞서 언급했듯,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이 과거보다 쉽게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카드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중간 마진'을 뻥튀기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청계천 공구업체들에만 미친 영향도 아니다. 김 대표는 '공장'을 언급했다.
"옛날엔 대구 부산 광주를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그땐 괜찮았어. 마진도 있었고, 물건도 귀해서 흔들면 사겠다고 난리였지. 근데 지금은 공장이 없잖아, 공장이. 공장이 있어야 해.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인천 남동공단 있지? 예전에는 자리가 없었어, 들어가고 싶어도. 근데 이제 빈 곳이 많아."
실제 국내 공장들이 얼마나 가동되는지를 알 수 있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1998년 IMF(67.6%) 때 수준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1년 80.9%(1~9월 기준)로 정점을 찍었던 수치는 매년 꾸준히 떨어져, 2018년 72.8%를 기록했다. ㄱ대표처럼 30년 넘게 청계천을 지키며 공장 가동에 필요한 공구를 판매한 이들은 이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ㄱ 대표는 "현대차 구매대행해주던 곳도 문 닫았어.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에 공구 납품하던 양반은 양산에 있던 곳까지 물건 다 빼고 문 닫았을 정도야. 이번 정부 들면서 태양열, 태양광(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바꿨잖아. 그 양반 제네시스 끌고 다니다가 지금은 아마 차 바꿨을 거야. 뭐 하나 바꾸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윗대가리들은 너무 쉽게 하고 있어. 자기들이 그렇게 바꾸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휘둘리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50분가량 이야기하며 자신이 현재 공부하고 있는 명리학에서부터(기자의 사주까지 봐줬다) 10대 시절 일화까지 대화 주제로 삼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가 물어도 다른 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셈이었을까.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나는 기자에게 중국제 제도용 칼을 선물로 주었다. "요즘 중국 물건들도 나쁘지 않아, 10년 사이에 정말 많이 좋아졌어"라고 덧붙이며.
오히려 청계천 공구거리서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건 '중국의 성장'과 '중국발 공포'였다. 그간 만났던 제조업 관계자들의 걱정거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