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판결] '삼성에 오너경영이 효과적인가' 재계·지배구조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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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 '삼성에 오너경영이 효과적인가' 재계·지배구조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 양도웅 기자
  • 승인 2019.08.2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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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액(횡령액) 86억원으로 판단
고등법원에 원심 파기환송... 이재용 부회장 실형 가능성 커져
대기업에 오너경영체제 VS 전문경영인체제 적합한지 논의도 재차 등장
"급변하는 환경엔 오너경영체제 적합" VS "어느 쪽이든 장·단점 있어" 엇갈려

삼성그룹 오너 3세로 현재 삼성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위기에 처했다.  

삼성그룹에 오너경영체제(가족경영체제)가 적합한가, 아니면 전문경영인체제가 적합한가에 대한 '오래된 물음'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9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고등법원에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 측에 건넨 뇌물액이 2심 때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양에게 건넨 말 3마리의 구입액 34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29일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액(횡령액)을 86억원으로 확정하면서 이 부회장의 실형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사진 연합뉴스]

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도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현안과 관련한 청탁(뇌물)이라고 봤다. 

이로써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액이 기존 승마지원 용역 대금 36억원을 포함해 86억원에 이르게 돼,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은 5년 이상의 실형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뇌물공여죄의 처벌 내용은 액수와 상관없이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이지만, 이 부회장이 최씨 측에 건넨 뇌물이 모두 회삿돈에서 지급됐기 때문에 전액 횡령액으로 인정된다.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징역 5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무기징역'으로 처벌한다. 

일각의 예상대로, 이 부회장에게 중형이 선고되면, 일본과의 무역 갈등 속에서 삼성그룹의 경영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는 상당 기간 이어지게 된다.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즉각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로 삼성그룹의 경영상 불확실성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며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이번 판결이 삼성그룹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행정적 배려를 부탁드린다"고 밝히고,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이번 판결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에 크나큰 악영향을 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29일 대법원은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원심을 모두 파기하고 고등법원에 다시 재판하라고 선고했다. [자료 연합뉴스]
29일 대법원은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자료 연합뉴스]

◆ 재계관계자 "삼성전자의 2030년까지 133조원 투자, 오너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 재판부 이 점 고려해야"

경총과 전경련의 이같은 논평은 '오너경영체제'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다. '오너가 곧 기업'이라는 우리나라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녹색경제신문과 통화한 재계관계자 A씨는 "지금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져 대규모의 선제적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선 단기간에 아웃풋을 내야 하는 CEO체제(전문경영인체제)보다는 오랫동안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오너경영체제가 적합하다"며 "삼성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에게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만 1만5000명을 투자하겠다는 판단은 CEO가 아닌 오너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며 "CEO는 단기간의 실적에 연연해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어, 이 같은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오너경영체제의 장점으로 꼽히는 '넓은 시야'와 '과감한 결정' 등은 외국에서도 주목하는 부분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4년 11월에 경영권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창업 가문이 회사를 지배하는 가족경영기업(오너경영체제)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컨설팅업체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포천 500대 기업' 중 19%가 가족경영기업이었다. 2005년 15%보다 비중이 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가족경영기업이 유지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창업자나 후손이 단기 실적에 쫓기지 않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뚝심 있게 기업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재계관계자 A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주사업장을 방문해 에어컨 출하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주사업장을 방문해 에어컨 출하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또, 이코노미스트는 차입을 꺼리는 오너들이 부채비율을 낮게 유지해 위기 시 더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언급한 근거와는 다르지만, 다른 이유에서 오너경영체제가 위기 시 더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재계관계자 B씨는 밝혔다. 그는 "오너경영체제의 장점 중 하나가 '강한 주인의식'"이라며 "가족의 사적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삼성이 최순실씨 측에 건넨 86억원이, 대법원의 판단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이 '사적이익'을 위해 전달한 게 아니라 삼성그룹을 위해 전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긴다. 

특히, 한국 사회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펼쳐 왔고, 이 과정에서 부득의하게 국가(정부)와 자본(기업)이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건넨 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재계관계자 B씨는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가 이같은 역사적 배경뿐 아니라 현재 경제 상황이 말로만 떠느는 위기가 아닌 실체적 위기라는 점, 그리고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기업지배구조 전문가 "어떤 체제든 보완책 필요... 지금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구조 갖고 있는지 점검해야"

이번 이재용 부회장 판결과 별개로 오너경영체제(가족지배기업)와 전문경영인체제 중 어느 쪽이 더 적합한지에 대한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3년 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가족지배기업의 경영성과 및 투자성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는 한국외대 고윤성 교수(경영학부)는 29일 녹색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삼성에게 오너경영체제가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이 질문에 답은 YES일 수도, NO일 수도 있다"며 "어느 체제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3년 전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가족지배기업을 분석했고, 그 결과에 대해 당시 "가족지배기업이 비가족지배기업에 비해 경영성과와 투자성과가 우수했다"고 적었다.

이런 성과가 발생한 이유로 가족지배기업이 가진 ▲가족구성원과 기업체 간의 운명공동체 의식 ▲강력한 리더십 ▲신속한 의사결정 ▲이런 특성에 따른 강한 위기 극복 능력 등을 꼽았다. 

하지만 "가족지배기업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공시를 통해 기업 투명성을 제고한다면, 시장에서의 가족지배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불신과 우려로 인한 디스카운트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고윤성 교수가 2016년 발표한 '가족지배기업의 경영성과 및 투자성과' 보고서 한 부분. 

그간 오너와 기업들의 부도덕한 사건 등으로 '오너경영체제'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사회의 인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개략적으로 밝힌 셈이다. 

고윤성 교수는 "(보고서에서 제언한 뒤 약 3년 동안) 상법 등의 개정이 이뤄져 기업들이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들을 해왔다"며 "하지만 기업을 비롯한 정부의 노력이 '충분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너경영체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사람이든 조직이든 제도권 하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오너경영체제를) 돕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돕는다는 게 '세무조사 면제' 등이 아니라, 기업이 신뢰성을 높이고 성장할 뿐 아니라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국가경제에 이로운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윤성 교수는 경영환경이 어려울수록 오너경영체제가 효과적이라는 의견에 대해선 "그럼 경영환경이 좋아지면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면 안 되는 것이냐"며 "논리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게 적절한 것"이라며 "항상 오너경영체제가 맞고, 전문경영인체제가 맞다고 주장하는 건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그룹이 고민해야 할 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삼성그룹에 어떤 의사결정구조(지배구조)가 적합한가'이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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