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일깨운 알파고
상태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일깨운 알파고
  • 조원영
  • 승인 2016.03.18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종건                 언론인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적 바둑대결은 인간과 인공지능에 관한 거대하고도 미세한 무수한 담론의 소재가 됐습니다. 아마추어 3급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바둑 실력이지만 저도 이번 다섯 번의 대국을 통해 이세돌 식의 표현을 빌리면 바둑의 묘미를 ‘원 없이 즐겼다’는 느낌입니다.

과거 1980년대 초 조치훈 9단이 일본 바둑계를 석권하던 시절, 기성 명인 본인방 등 일본 주요 신문사 주최 바둑대회에서 우승해 ‘대삼관(大三冠)’을 달성할 때 국내의 TV방송은 물론, 신문들도 회사 앞에 대형 기보를 설치해 생중계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한국인인 조 9단의 승리를 응원하는 편협함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의 대국은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의 차원이나 긴장의 정도가 전 지구적이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이를 중계하는 매체도 다양해져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대국을 감상했습니다.

담론은 대국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판만 져도 다 지는 것”이라는 이세돌의 말이 전해지면서 인간의 승리를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근거 없는 낙관은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무지이자 자만이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자만은 첫 판의 패배를 보고 움찔했습니다. 그러나 바둑의 격언으로 한 번의 패배는 ‘병가지상사’이거니 했습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의 무례한 침입에 감정이 상해 실수를 한 것이겠거니, 감정의 동물인 인간과 감정이 없는 기계의 대결에서 기계가 우세하거니 하며 억지 위안을 찾으려 했습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딥 마인드의 대표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이겼다.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고 했을 때 얼른 그 의미를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1969년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 될 것이다”고 했었죠.

그러다 두 판, 세 판을 연거푸 지고서야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고,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공포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에선 암기왕과 컴퓨터의 게임처럼 애초에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을 걸어온 구글의 사기극이라는 주장도 폈습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과는 달리 알파고는 이세돌의 대국뿐만 아니라 이세돌 이외에 수많은 기사의 수백만 건에 달하는 기보를 처리, 그 중에서 최적의 수를 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게임의 불공정성에 분노하는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3국 패배 후 이세돌은 “이세돌이 졌을 뿐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는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정이자, 인간으로서 인공지능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그 의지로 그는 4국을 이겼습니다. 알파고의 패배가 인간의 기를 살리기 위한 기계의 장난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기보를 분석해 인공지능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사람들은 안도했습니다.

바둑의 가로 세로 19줄과 361점은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이뤄지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대개의 인생이 그렇듯 바둑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둘 수만은 없습니다. 한두 번은 실수를 하고 그것을 타개해 나가는 것이 바둑입니다. 실수를 덜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덜 치명적으로 하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알파고가 섭렵한 모든 기보들도 기사들의 실수와 타개의 기록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최적의 선택을 함으로써 실수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는 있으나 실수가 없는 완벽한 바둑은 알파고도 아직은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 완전하지 않은 기사들의 기보를 바탕으로 만든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돌이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에서 치러진 제 5국은 마지막 대국답게 5시간여 동안 피를 말리는 접전으로 진행됐습니다. 다섯 판 중에서 가장 많게 280수까지 둬 알파고도 처음으로 초읽기를 경험했습니다.

이세돌이 불계패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반집 승부에 가까운 미세한 계가였습니다. 이세돌은 대국 후 “원 없이 마음껏 즐겼던 대국”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기계를 가지고 놀지언정 기계에 예속되지 말자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이처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간의 인공지능에 대한 무지와 자만으로 시작하여 반성과 안도를 거쳐 동락(同樂)의 단계로 진행된 해피엔딩 드라마였습니다. 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이 지속되려면 ‘� 마인드(Deep Mind)’의 목표가 인간의 ‘깊은 지능’을 벗겨내려는 것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구글이 앞으로 급수에 맞는 알파고를 만들어 보급한다면 나도 한번쯤은 실력테스트를 겸해서 3급 알파고와 바둑을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친구와 내기바둑을 두며 대마를 죽였다가 기사회생해서 역전하는 그런 인간적인 바둑을 더 즐겨 둘 것입니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