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알아야 할 6.25전쟁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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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아야 할 6.25전쟁의 진실
  • 허평환
  • 승인 2011.06.2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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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진실에 대한 소모적 논쟁 끝내고 평화통일 위해 전력해야

6.25전쟁이 발발한지 또 한 번의 일 년이 지났다.

이렇게 우리는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 61주년을 맞았다. 61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내부에서는 6.25전쟁이 크게 왜곡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은 6.25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 일어난 전쟁인줄 알고 있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는 6.25를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국군이 북한으로 먼저 처 들어가 일어난 북침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6.25때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민족통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미국을 민족통일을 방해하고 민족을 분단시킨 민족의 원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6.25의 진실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평화통일을 위해 전력해야 할 때다
우리 국군의 6.25참전 용사들 역시 민족통일을 방해하고 민족을 분단시킨 반 통일세력이요 수구꼴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국군과 미군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진실이 아니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구 소련 수상 스탈린을 부추겨 일으킨 공산적화전쟁이다. 박헌영이 가짜 돈을 찍어내는 정판사 사건으로  당국에 체포되게 되자 북쪽으로 도주하여 김일성을 꼬드겼다. 남쪽 인민들을 모두 남노당원으로 조직해 두었기 때문에 휴전선에 총 몇 방만 쏘면 남쪽 인민들이 봉기하여 이승만 일파를 쫒아내고 공산적화 통일을 할 수 있다고 꼬드겼다.

이에 고무된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가 공산적화 전쟁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을 우려하면서 김일성의 전쟁제의를 거절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얼마 후 박헌영과 함께 다시 스탈린을 찾아가 전쟁을 승인하기만 하면 미군이 개입하기 이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하면서 스탈린을 설득했다.

스탈린은 미군개입 이전에 전쟁을 끝낼 것과 남쪽이 먼저 공격하도록 하여 맞받아치는 전쟁을 할 것과 모택동을 끌어 들일 것 등을 주문하면서 전쟁을 승인하였다. 스탈린의 남침 승인을 받은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모택동을 찾아가 스탈린의 지령을 전하면서 전쟁 동참을 구걸했다.

모택동은 소련의 공군지원을 전제로 지상군 투입을 약속하였다. 6.25전쟁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세계 공산적화 전쟁의 일환이었다. 이런 사실은 1992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구 소련 비밀문서를 우리 정부에 넘겨줌으로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다.

따라서 6.25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인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6.25전쟁의 성격 또한 내전이나 민족전쟁이 아니다. 스탈린과 모택동과 김일성이 합작하여 세계 공산화를 위해 일으킨 세계 공산화전쟁의 일환이다. 이때 만일 우리 국군장병들이 싸우지 않았거나 미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은 공산적화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6.25참전 용사는 민족을 분단시킨 반 통일 수구꼴통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이다. 미국 또한 민족을 분단시킨 민족의 원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켜준 우방이요 피 흘려 함께 싸운 혈맹이다.  

양민학살도 그렇다. 북한 인민군이 대한민국 땅을 점령한 후 자본가 지주 군인 경찰 공무 원 가족을 찾아내어 인민재판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양민을 처형했다. 이후 국군이 반격해 오자 퇴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북으로 끌고 갔다. 북으로 끌고 갈 수 없는, 그동안 감옥 에 넣어두었던 무고한 양민은 처형하고 퇴각했다.

이후 반격하여 들어온 우리국군과 경찰들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데 앞장선 북한공산당 프락치들을 찾아내어 처형 했다. 그리고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지리산 등지에 숨어 투쟁을 한 북한 빨치산 토벌작전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 빨치산에 협조하는 양민들을 학살한 거창 양민학살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로 6.25전쟁이 낳은 민족의 비극인 것이다. 이와 같이 양민학살은 북한 인민군과 국내 남노당 세력이 먼저 자행한 것이다.  
      
62.5전쟁 61주년을 맞는 오늘에도 6.25전쟁의 성격과 진실에 대해 수많은 논란이 있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그 이유는 6.25당시 우리 내부의 부모형제 이웃이 친공 반공으로 나뉘어 서로가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싸움을 했고 지금도 남북이 통일을 하지 못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6.25전쟁의 모든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또 북한 공산주의로는 국민의 최소한의 행복한 삶의 조건인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우리 대한민국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모적인 6.25전쟁 진실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남북을 우리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평화 통일시키는 데 국력을 모으자.

허평환 :  현, 평화통일국민연합 회장
                전, 국군기무사령관 예비역육군중장

허평환  hph20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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