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폭탄에 진짜 전기요금이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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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폭탄에 진짜 전기요금이 가렸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9.07.23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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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누진제 개편안에 가린 전기요금… 제대로 된 논의 시작해야

전기요금 누진제 축소 방안 논의가 몇 년째 여름마다 반복되고 있다. 매년 조정할 거라면 누진제를 아예 폐지하는 게 낫다는 여론도 높아졌다. 기후변화 등으로 여름이 뜨거워지면서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지는 추세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22일 서울 종로 에너지정의행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22일 서울 종로 에너지정의행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올해 주택용 전기요금 완화 목적으로 결정한 ‘누진구간 확장안’이 여름철 폭염 대책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개별 주택이나 국가 차원에서 적절한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현재 전기요금 논의가 누진제 개편안에 막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진제 완화 뒤에 가려 진짜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방안과 관련한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누진구간 확장안’을 보면 전기 사용량이 많은 7~8월 한시적으로 누진 구간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킬로와트시(㎾h)당 93.3원이 부과되는 1단계 구간을 0~200㎾h에서 0~300㎾h로, 187.9원이 부과되는 2단계 구간을 200~400㎾h에서 300~450㎾h로 바꿨다. 3단계 구간은 450kWh 초과로 조정됐다.

가구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할 목적인 이번 조정안에 따라 할인 혜택을 받는 가구 수는 지난해 사용량 기준으로 1629만 가구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월 1만142원의 전기료 할인이 예상된다.

이 대표는 누진제 ‘전기요금 폭탄’이 과장된 공포라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해 가구당 평균 전력 사용량은 235kWh였고, 더위가 절정이던 8월엔 347kWh였다. 폭탄 수준인 전기요금 30만원 이상이 나오려면 월 1100kWh 이상의 전력을 사용해야 한다. 1000kWh 이상을 사용하는 가구는 전체의 0.1% 수준이다. 이 대표는 누진제가 없어지면 전기요금이 떨어진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누진제라는 건 전체 전력요금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낮은 전기요금, 이상은 높은 전기요금을 내도록 설계돼 있어요. 만약 누진율 없이 일괄적으로 요금을 설계하면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사용자는 요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누진제를 폐지하면 70% 가까운 서민들의 요금이 올라가는 거죠. 여름철로 한정해도 매달 600kWh 이상(전기요금 13만원 이상)을 쓰는 가구는 전체 5% 가구에 불과해요.”

이 대표는 한전이 올 하반기 밝히기로 한 전기요금 원가공개가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한전은 현재 총괄원가만 공개하고 있는데 주택용과 산업용 용도별 전기공급 원가까지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전기요금에 대한 적정 수준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면 지금처럼 정치 논리에 따라 전기요금이 움직이는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이 대표는 진단했다.

그는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려면 과세 개편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기요금을 단순히 인상하는 방안에는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환경 개선, 재생에너지 투자 등 사안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기요금에 합산하는 방식은 한전 등 발전사업자가 선한 마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독일 등 국가와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를 비교한 그래프. [자료=에너지정의행동 제공]
독일 등 국가와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를 비교한 그래프. [자료=에너지정의행동 제공]

대신 국가가 나서 세금을 걷을 명목을 정한 뒤 소비자가 직접 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미세먼지·온실가스 저감, 에너지전환 비용 등 마련을 위한 조세·부담금 개선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전기요금이 3배 이상 비싸다고 알려진 독일과 실제 전기요금을 비교하면 차이가 2배도 되지 않아요. 다만, 독일은 세금과 부담금 명목으로 걷는 부분이 훨씬 더 큰 거죠. 국내 휘발유 가격의 절반 이상이 세금인 것과 비슷한 이치에요.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 대다수 나라들과 비교해도 국내 전기요금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낮은 수준입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에도 중복 투자를 줄이고, 돈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력기금 명목으로는 현재 전기요금의 3.7%가 징수된다. 2017년 기준으로 4조1439억원 규모가 걷혀 1조6757억원 정도가 사용됐다.

이 대표는 현재 전력기금이 제대로 된 사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전력기금을 전력 산업을 지원하는 목적이 짙은 명칭부터 바꾸고 좀 더 적극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면 과기부에서 원자력 기금, 산업부에서 전력기금을 운영해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 기금에 중복 투자를 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을 줄여 제대로 된 곳에 명확히 쓰이게 해야 합니다. 외국의 재생에너지 충당금처럼 명확한 목적에 따른 기금이나 목적세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전기세’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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