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 정치 상황에 휘둘리는 국내 IT업계 '몸살'...“문제는 낮은 국산화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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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 정치 상황에 휘둘리는 국내 IT업계 '몸살'...“문제는 낮은 국산화율”
  • 정두용 기자
  • 승인 2019.07.0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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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변화에 흔들리는 IT산업
정부, 10년 전부터 "국산화" 외쳤지만 효과 '전무'
정치상황에 경제 상황 급변...기업들 "피로도 높아"

미ㆍ중 무역전쟁에 이어 일본의 보복성 경제 조치에 국내 IT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외부 요인에 국내 산업이 이토록 요동치는 핵심적인 원인이 그간 IT업계에서 고질적 문제로 꼽혀온 ‘낮은 국산화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일 IT업계에 따르면, 소재나 장비 등을 제작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활성화됐더라면 이 같은 위기에 완충 역할을 했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국제정세 등 외부 조건에 경제 상황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처럼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 반도체 시장이 일본의 보복성 조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라인에서 한 직원이 생산에 필요한 설계 회로도 기판의 이상 여부를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국내 반도체 시장이 일본의 보복성 조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라인에서 한 직원이 생산에 필요한 설계 회로도 기판의 이상 여부를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기술력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국내 산업들의 기반 기술을 보유한 곳은 대부분 외산 업체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스마트폰 등의 제작을 뒷받침할 국내 소재ㆍ장비 납품 업체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등의 보복성 조치가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원인이 됐다.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5세대(5G) 통신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지만, 구축 과정에 일부 화웨이 장비가 사용됐다. 이에 따라 미ㆍ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화웨이 이슈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IT업계 전문가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화웨이 제재나 일본의 보복성 조치 등에 국내 기업이 이토록 흔들리는 근본적 원인은 결국 ‘낮은 국산화율’로 귀결된다”며 “외부적 요인으로 특정 제품의 수요가 변할 수 있지만, 국내 제조사들의 기반이 탄탄했다면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작금의 상황을 보면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의 철칙을 다시금 새겨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모래 위에 쌓은 ‘IT 강국’...반도체 소재 국산화율 50.3% 수준
◇10년 전부터 추진해온 ‘반도체 국산화 전략’ 효과 전무...“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3일 2017년 기준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율을 50.3%로 추정했다. 올해도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도 올해 1~5월 기준 반도체 핵심 소재인 리지스트의 대일 수입의존도가 91.9%에 달한다는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리지스트는 반도체 공정에서 빛을 인식하는 감광재로 사용된다.

OLED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대일 수입의존도 역시 93.7%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2017년 기준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율을 50.3%로 추정했다. [그래픽=연합뉴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2017년 기준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율을 50.3%로 추정했다. [그래픽=연합뉴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의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 레지스트(PR), 고순도 불산(HFㆍ에칭가스)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며 “3개 품목 외에도 웨이퍼 등 소재가 추가 지정될 가능성이 있어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절실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확대를 위해 하반기부터 EUV(극자외선) 라인의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러며 “해당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인 EUV용 포토 레지스트를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고 국내 주요 산업에 타격을 줄 방법으로 ‘수출 규제’ 카드를 쓴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4일부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핵심 소재들의 한국 수출절차를 까다롭게 바꾸는 등의 규정을 적용키로 했다. 외국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의 우대제도인 ‘화이트(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번 조치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LG·SK 등은 “단기적인 피해는 미비하나,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사업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율은 소재보다 더욱 낮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에 준공한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 공장엔 4000대가 넘는 반도체 생산 장비가 들어섰다. 이 중 국산 장비는 2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장비로 공장을 꾸렸다.

2017년 기준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에 그쳤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44.7%)과 일본(28.2%)이 장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장비가 차지하는 세계 점유율은 3.6%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우려, 2010년 '시스템반도체 및 장비산업 육성전략'을 통해 2015년까지 국산 반도체 장비 점유율을 3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현 상황에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 정부는 시스템반도체 일부 품목 국산화와 반도체 장비 국산화를 위해 민관과 합동으 1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반도체 장비산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13%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에도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중간재 등 핵심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내년부터 매년 1조원씩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일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기간산업에 필수적인 소재부품, 수입산 다변화, 국내생산 경쟁력 제고 등 다방면에 걸쳐 정부가 지원에 나서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와 관련 “우리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일본에서만 수입해야 하는 소재나 부품들을 골라냈고 그걸 골라내니 긴 리스트가 나오더라. 그 중에서 1,2,3번째에 해당하는 품목이 이번에 일본이 규제한 품목들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것들인 대응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앞서 관련 소식을 접한 뒤 5대 그룹 부회장에게 연락해, 그룹 별로 추가조치 예상 품목과 정부에 요청할 사항을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스마트 기기 제조사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부는 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며 “이제 기반 기술에 투자해 개발하면 어느 세월에 일본에 대응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정은 외산업체를 기반으로 짜여있어, 이들이 특별한 의지가 없는 한 국산화율을 높이기 힘들 것이란 진단도 내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일본의 조치와 관련, 국내 반도체 소재에 대한 국산화를 추진과 관련해 다양한 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원익머트리얼즈, 솔브레인, 한솔케미칼 등에 주목하고, SK하이닉스는 SK머티리얼즈, 오션브릿지, 엘티씨와 협업을 모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통신업계도 ‘노심초사’...미ㆍ중 관계 ‘주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무 부처인 미국 상무부는 여전히 화웨이를 '블랙리스크'에 올려놓고 거래 허가 신청을 매우 엄격히 심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에 “화웨이는 이미 국내 통신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배제하긴 힘든 상황”이라며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를 면밀히 살피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IT업계는 일단 미ㆍ중 관계가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언제든 다시 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최근 국내 산업이 맞은 위기가 미국, 중국, 일본의 정치상황에 따라 발생해 기업의 입장에선 “속수무책”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이통3사는 화웨이의 유무선 네트워크 장비를 통신망에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과 KT는 유선망에, LG유플러스는 무선ㆍ유선망 모두 화웨이 장비가 들어와 있다. LG유플러스는 5G 망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로 인해 국내 IT기업은 화웨이란 고객을 잃는 수준이 아니라 사업 자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점은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 “통신 장비의 국산화도 반도체와 함께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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