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칼럼] 유산균의 선구자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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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 칼럼] 유산균의 선구자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을 애도하며
  • 양현석 기자
  • 승인 2019.06.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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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야쿠르트 출시로 유산균 발효유 한국에 알린 건강 전도사
‘건강사회 건설’ 창업 이념으로 ‘야쿠르트 아줌마’ 신 유통채널 개척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 세워... 앞으로도 전문경영인 체제 예상돼
양현석 녹색경제신문 유통부장
양현석 녹색경제신문 유통부장

 

유산균 발효유를 국내에 처음 출시해 지금의 한국야쿠르트를 만든 윤덕병 회장이 향년 92세로 26일 별세했다.

국민 대다수가 하루 세끼 먹기도 어려웠던 1969년 유산균 발효유 기업을 만들었던 윤 회장은 50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마셨을 ‘국민 음료수’ 야쿠르트의 역사였다.

1927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그의 나이 42세였던 1969년 사촌형인 윤쾌병 건국대 축산연구소장과 함께 ‘한국야쿠르트유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유업 상황은 정부의 진흥정책으로 인해 원유 생산량은 늘어나고 있었지만, 처리 및 가공능력은 턱없이 부족해 힘들게 생산된 원유가 버려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 회장은 앞으로 우리나라 축산의 미래는 우유 가공업에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건강사회 건설’이라는 창업이념을 바탕으로 유산균 발효유 사업을 시작했다.

1971년 안양공장을 준공하고, 처음 제품을 내놓았을 때 소비자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유산균 발효유’라는 제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세균을 돈 주고 마시냐?”는 반응이 대표적.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을 호의적으로 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지금은 ‘프레시 매니저’로 불리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이다.

1971년 야쿠르트 출시와 함께 시작된 ‘야쿠르트 아줌마’는 국내에서 가장 독창적인 유통 채널로 불린다. 제품 홍보와 마케팅, 판매 및 배송을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게 한 한국야쿠르트의 경쟁력 그 자체였다.

50년 동안 국민 건강의 일익을 담당해 온 한국 야쿠르트와 윤덕병 회장은 1983년 팔도라면으로 라면산업에 진출하면서 제 2의 도약을 이뤄냈고, 1995년에는 음료사업에 진출하며 법인명을 한국야쿠르트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윤덕병 회장의 선구자적인 생각은 제품에만 그치지 않았다. 창업부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원칙으로 세운 그는 가족경영을 배제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식음료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오너리스크도 한국야쿠르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회장이 별세하자 일각에서는 아들인 윤호중 부회장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기도 하지만, 한국야쿠르트 측은 지금처럼 전문경영인 체제가 유지될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쌓아 온 50년 전통이 쉽게 변경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최초로 유산균 음료를 생산해 50년간 500억병의 야쿠르트를 판매한 한국야쿠르트의 창업자 윤덕병 회장의 신념이었던 ‘건강사회 건설’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그의 사후에 어떻게 이어질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겠지만, 우선 지금은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이 일궈 놓은 건강사회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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