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의 김영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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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의 김영삼 대통령
  • 조원영
  • 승인 2015.12.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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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건             언론인

고 김영삼(YS) 대통령은 기자들로부터는 대체로 호감을 산 정치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야당 대표 및 대통령 후보시절은 물론 대통령 재직 중에도 그런 관계는 지속됐던 편입니다. 야당 시절의 투쟁과 집권 후의 개혁은 결단력으로 칭송됐고, 잦은 말실수는 애교나 인간미로 덮어졌습니다.

그에 대한 언론의 호감 속에는 언행에 구김살이 없었던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그가 독재와 맞서 싸우던 시절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부채감과 동병상련이 얼마간은 얹혀 있었을 겁니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흡인력이 특출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정치부 기자시절 더러 합동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일 외에 YS와의 특별한 인연은 없습니다만 그를 가까이에서 마주한 적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은 그가 199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 대망의 1993년을 맞이하기 직전 세밑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서울경제신문의 정치부장이었던 필자는 ‘새벽을 뛰는 한국인’ 제목의 신년 기획시리즈의 첫 회 취재대상으로 선정된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의 새벽 조깅현장을 스케치했습니다.

상도동 자택 뒤의 마을 공원에서 기다렸다가 그와 공원을 몇 바퀴 돌았습니다. 조깅을 별로 하지 않았던 필자는 따라가기가 힘들었지만 매일 함께 달린 탓인지 40여 명의 주민, 경호원, 보좌관들은 그와 보폭을 맞추어 잘 뛰었습니다.

스크랩북에서 1993년 1월1일자 기사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가 앞장서서 뛰게 될 5년 후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국민 모두가 희망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기를 빈다’는 마지막 문장이 눈에 띕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조깅은 경제주권의 상실이라는 IMF를 초래하고, 아들을 감옥에 보낸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절망으로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조깅을 마친 뒤 자택 응접실에서 차 한 잔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는 다짜고짜 제 손을 잡고 “임 동지, 나를 도와줘야제. 내와 같이 일해야제”라고 했습니다. 나는 잠시 그의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동지’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당원으로 여겼거나, 특유의 내편 만들기 친밀화법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계 후에 그와의 관계가 매우 각별했던 동료 기자들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그는 ‘기자’보다는 ‘동지’ 호칭을 많이 썼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개 동지” 하며 상대의 두 손을 감싸 쥐고 기도를 해서 당황케 하는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YS와의 두 번째 만남은 그의 대통령 취임 후인 1993년 여름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한국일보 주간한국 부장으로 있었습니다. 청와대 칼국수가 대 유행이던 때였습니다. 청와대 칼국수 점심 초대를 못 받으면 국민 대접을 못 받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때에 문공부에서 청와대 칼국수 오찬에 초청됐다는 연락을 받은 겁니다. 조·석간 발행 시절 조간인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주간부장 둘만이 초청된 자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칼국수 오찬이 흔했기로 주간지 편집장까지 챙기다니 YS의 관심이 의외로 세심함을 느꼈습니다.

무엇으로 밥값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던 중 그해 초파일 그가 조계사 법당에서 참배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부처 앞에서 합장자세가 아니라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불교계가 들고 일어나 정치사회적인 논쟁거리가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식사 중에 “부처 앞에서 합장을 안 하시면 불교도들이 섭섭해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의중을 떠봤습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교인이 절에 가서 절하면 우상숭배 아이가?”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국내 최대 종교의 상징인 부처를 우상 취급한다고 볼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가 개신교의 독실한 장로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대통령은 개인의 종교를 이유로 다른 종교를 포폄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되는 공인의 자리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려고 부동자세를 취했다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른다는 말처럼 절에 가서는 절의 법도를 지켜주는 것도 도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의 문제이자 공인의 문제이기도 한 까다로운 이 문제를 일단 사생활 영역 안의 일로 치부해 두기로 했습니다. 얘기가 되더라도 사후에 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해 11월 경주에서 일본의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와 실무정상회담이 열려 양국 정상이 나란히 불국사를 참배했을 때도 호소카와 총리가 합장을 한 것과는 달리 김 대통령은 여전히 부동자세여서 혼자였던 조계사 장면보다 대비가 더 확연했습니다.

YS가 불교계를 지원하는 제도개선을 많이 실천한 대통령이면서도 임기 내내 불교계와 갈등관계였던 것은 그런 원리주의적인 종교관과 관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조계사 공권력 투입, 군부대 불상훼손 등의 법난(法難)에다 내분에 휩싸였던 조계종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불교계조차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필자로 하여금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DJ) 대통령의 취임 첫해 조계사 초파일 참배 모습에 눈길이 가도록했습니다. DJ는 공손히 합장을 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대통령들도 같은 경우로 조계사에 가서 부동자세를 취했다는 얘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런 독실한 믿음으로 하느님 곁에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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