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상봉'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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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상봉'의 비극
  • 조원영
  • 승인 2015.10.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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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건       언론인
 

남북 간의 8·25합의에 따라 남쪽 89명, 북쪽 96명의 이산가족이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상봉했습니다. 성사되기까지 남쪽의 가족이나 당국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일도 많았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좋은 신호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면서 민족적 비극의 어처구니없음에 새삼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비극이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은 우리역사는 물론 인류 역사에, 세계인들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작별상봉’. 이 말도 안 되는 어휘의 조합이 비극의 어처구니없음을 상징합니다. 작별이면 작별이고 상봉이면 상봉이지 왜 작별상봉입니까? 작별하기 위해서 상봉해야 하는 그 기막힌 상봉에는 다시 만날 기약도 없습니다.

이제는 만나고 싶을 때 만나야 합니다. 이산가족 방문사업이 시작된 2000년에 13만여 명이던 남한 내 이산가족이 15년 사이에 절반이 타계해 현재 남아 있는 숫자가 6만 6,000여명이고 지금도 1년에 4,000여 명씩 타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1년에 200명씩 만난다면 330년이 걸리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16년이면 모두가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사실 남한이 하자는 대로만 했어도 이산가족의 상봉은 오래전에 끝났고, 고향방문으로까지 발전했더라면 상봉 전에 세상을 뜬 조상의 묘소까지 찾아 성묘하고, 만나지 못한 나머지 일가친척들을 모두 만나 한반도에 서려 있는 한의 많은 부분을 풀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남북이 체제경쟁을 벌이던 1970년대까지만도 이 비극의 책임은 남북에 비슷하게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쟁이 끝난 이후인 1980년대부터는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습니다.

북한이 그런 반인륜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게 한 것은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낙원이라고 선전해 온 거짓이 탄로 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남한사회에 대한 왜곡과 비방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두려움과 같은 성격의 두려움입니다.

방문단 사업은 처음 세 차례는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오갔습니다. 그러다 4차 때부터 금강산으로 가서 만나는 일방 상봉이었습니다. 북측으로선 경비부담도 줄이면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진작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 사회를 볼 수 없게 하려는 의도가 더 컸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납북자는 없고 자진 월북자만 있을 뿐이며, 국군 포로도 없고 귀순자만 있을 뿐입니다. 남한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북한에서 신분이나 지위에 차별을 받았고, 그 차별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이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좌제가 사라지기 전 남한에서도 그랬습니다)

북한은 그 핍박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남측 가족들의 북측 가족에 대한 생사 확인 요청에 아주 선택적으로 응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억압이 드러나는 사람들의 경우 남측 가족들과 상봉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과거에 비해서는 덜한 듯도 싶지만 “김일성 원수님 덕분에 잘살고 있다”는 북측 가족의 인사말은 “김정은 원수님”으로 바뀌었을 뿐 이번 상봉에서도 되풀이됐습니다. 취재 기자의 노트북을 검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들이 휴대한 노트북까지 검사했다는데 이는 과거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진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됐습니다. 이미 북한 사회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김일성 3대의 ‘백두혈통’이 아니라 남한에 가족이 있는 ‘한라혈통’이라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이 아니라 3만 명에 이르는 탈북자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이산가족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중국대륙을 떠도는 탈북자를 포함하면 이런 이산가족은 훨씬 많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들이 ‘한라혈통’의 주류입니다.

북한은 이들을 체제의 위협으로 보고, 탈북자들을 사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을 상대로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 사업을 했던 ‘유우성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그들은 북한의 경제 개발에 선봉이 될 여지도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등에다 총을 쏠 게 아니라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나가 외화를 벌게 해야 합니다. 남한의 파독광부 및 간호사, 중동 근로자가 그랬듯이 그들도 북한의 가족들을 위해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보낼 것입니다.

이산가족상봉사업도 남한의 가족들이 북한의 가족들에게 물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번에 남한의 가족들은 가족당 1,500달러 범위 내에서 북쪽 가족에게 현금 선물을 전달했습니다만 보다 큰돈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필자는 이산가족은 아닙니다만 남북 간 통행이 자유로워진다면 백두산 자락에 서비스 센터를 차리는 오래 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협력은 정부 차원도 중요하나 민간차원의 협력이 이뤄질 때 완성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진실이 핵무기보다 더 큰 위력을 갖는 무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10개의 거짓을 새로 꾸며내야 하는 거짓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외부의 적을 만들어 증오심을 고취하는 데 국력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야 합니다.

8·25합의에서 우리 측은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의 정례화 등을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이산가족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우리 측 제안에 호응하기를 바랍니다. 작별상봉이란 말은 상시상봉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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