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생각하는 두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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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생각하는 두 영웅
  • 조원영
  • 승인 2015.06.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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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경       신산업경영원장

이 달 6일은 현충일.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바친 순국 선열과 장병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이 날 두 사람의 영웅을 생각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 영웅 채명신 장군과 강재구 소령이다.
1965년 한국군 사령관으로 4년 동안 낯선 땅에서 한국의 국위를 선양한 채 장군은 「군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보여 주었다.

월남 파병이 결정되기 전 그는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월남 참전 불가론을 건의했다. 평소 신임이 두터웠다고는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으로서는 당돌하기 이를 데 없어 노골적으로 불쾌한 빛을 보였다.

미국의 린든 B.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을 확대시켜 놓고 한국군 참전 요청을 해 온 마당에 안 할 수 없는 사정을 알면서 입바른 소리를 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채 장군은 6?25 전쟁 때 중령 신분으로 유격대 백골병단 사령관을 맡아 적진 후방 깊숙이 들어 가 사단장 이하 일개 사단을 궤멸시킨 게릴라전의 명수가 아닌가.

그러나 채 장군은 한국과 베트남의 다른 점을 들어 현지 베트콩이나 월맹군과 싸우는 게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의 역사, 지리, 자유월남의 민심을 떠난 독재 정치, 그 반대로 남북 월남 사람들의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는 호치민(胡志明)의 존재 등을 설명하며 채 장군은 이같은 험지에 정규군을 투입하면 큰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설명한다.

그러나 미 육군 2사단?7사단이 한국의 전선을 지키고 있으므로 미국의 요청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이들 전방 미군의 철수 ? 이전을 걱정해야 될 판이므로 한국군 참전은 결정됐다.

이 때 박 대통령은 채 장군의 건의를 참작하며 미국 정부에 한국군 참전에 따른 사전 이행(보장) 조건을 제시하여 확보케된다.

한국군 정예 부대가 빠져 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도록 방위태세 보강을 지원하고 군사원조 이관 계획 등을 취하하여 한국의 안전을 돕기로 했다.

우리 역사 상 전투부대 첫 해외 파병 케이스로 맹호부대가 그 해 10월 채명신(蔡命新) 장군 지휘 아래 현지로 떠났다.

현지에선 미국 사령관 웨스트 모어랜드 대장 지휘를 받도록 되었던 것을 채 장군이 설득하여 한국군 지휘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토록 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작전 지역 배정 등도 한국군이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66년 백마부대(9사단)이 증파됨으로써 구월 한국군은 군단 규모가 됐고 채 장군도 중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베트남의 역사와 같은 동양인으로서의 정서를 잘 이용하여 민사(民事) 작전에도 크게 성공했다. 태권도 교육, 노인 존경 등 그가 기울인 정성을 베트남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

채 장군은 귀국하여 국내에 군익할 때 박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3선 개헌을 추진할 때 다시 대통령을 만나 그 부당성을 간곡히 건의했다. 결국 그는 대장 진급에 누락됐다.

채 장군은 2013년 11월 서거할 때 장군 묘역을 사양하고 1평 규모의 월남 참전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고인의 뜻에 따라 그대로 안장됐다.

현재 한국 사회의 큰 병폐가 사치와 허영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온갖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다. 특히 군과 정치권이 더욱 심하다. 채 장군은 참군인?참한국인의 본을 보였다.

또 한 사람이 영웅은, 월남전 출병을 앞두고 1965년 여름 총천의 군 수류탄 훈련장에서 산화한 강재구(姜在求) 소령이다. 당시 그는 베트남으로 떠나기에 앞서 자기 중대원들의 수류탄 투척 훈련 교관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심약한 병사가 앞쪽(적 방향)으로 던져야 할 수류탄을 자기 머리 위에서 뒤로 던져 대기 중이던 중대 병사들 앞에 떨어졌다. 터지면 다수의 사상자를 낼 찰라였다.

이 때 강 소장(당시 대위)은 몸을 날려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쳤다. “꽝” 소리와 함께 강 소령의 몸통은 산만히 날라 갔으며 중대원들은 모두 구해 냈다. 그는 서울고와 육사를 나와 꿈을 키우고 있던 명장 재목이었다.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청사에 빛날 것이다.

베트남 참전으로 한국은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이들 두 군신(群神)의 탄생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이들은 화랑의 후예 선비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었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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