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 자체가 도전이었던 도전 퀸!” 김연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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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그 자체가 도전이었던 도전 퀸!” 김연아 선수
  • 편집부
  • 승인 2015.05.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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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이하 윤): 김연아 선수, 안녕하세요.
김연아(이하 김): 네, 안녕하세요. 김연아입니다.

윤: 오프닝곡이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가 아버지를 추억하며 작곡한 ‘잘가요 아버지’란 뜻의 <아디오스 노니노>였는데요. 김연아 선수와 어떤 인연이 있는 곡이죠?
김: 제 선수인생 마지막 시즌에 프리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곡입니다. 시니어 무대 데뷔할 때 탱고로 했는데 마무리도 탱고로 하게 돼 뜻 깊은 곡입니다.
윤: 최근 들어 언론에 등장하는 모습은 평창홍보대사, 유니세프 친선대사 등 ‘연아 대사님'으로 활약 중인데요, 오늘은 도전 대사로 연아 선수가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 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고 제 진솔한 경험에 대해 들려드리려고 해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재미있게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윤: 피겨스케이팅은 비인기 종목, 한국인의 성공이 희박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시작한 것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만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볼까 합니다 일곱살 어린 나이에 피겨 스케이팅에 입문! 어떻게 ‘꼬꼬마’가 피겨 스케이팅의 매력을 알고 시작하게 됐을까요?

김: 제가 처음 접한 것이 7살 때였는데, 아무것도 모를 때였습니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것도 모르고 언니랑 같이 방학 때 스케이트를 타러 갔었죠. 재미가 있어서 특강도 참여했는데요, 코치 선생님께서 제가 재능이 있으니, 선수를 시켜보자고 어머니께 권유해서 시작했었죠. 그렇게 보면 저보다는 어머니의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선수를 직업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시작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죠. 여러분도 보셨던 소치올림픽 때 제 코치였는데요, 당시 겁도 없이 몸을 던졌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스케이트 타는 것을 보고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대요.

윤: 피겨천재 김연아 선수! 13세, 트리플 5종 점프를 국내 최연소로 완성! 그때 기분은?
김: 처음부터 쉽게 된 것은 아니고, 오랜 시간을 통해 연습하다 보니 한 단계씩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 선수들이 고난도 점프를 뛰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많이 놀랐습니다. 꼭 점프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었고, 코치 선생님의 지도에 따르다 보니 되더라고요.
윤: 원래 겁이 없는 편인가요?
김: 어릴 때는 겁이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안 떠는 척 했던 거고요. 토크를 하고 있는 지금은 편안합니다. (웃음)

윤: 연아 선수가 연기한 세헤라자데, 007프로그램, 레미제라블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요.
김: 시니어로 데뷔할 때는 표현력에 자신이 없었어요. 처음 시도한 것이 탱고였습니다. 어린 나이로서는 강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안무가였던 데이빗 윌슨이 여러 캐릭터를 많이 추천했고 표현하고 시도하기를 좋아해서 따라가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습니다. 007 프로그램은 여자 선수가 올림픽 시즌에 007을 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큰 모험이었죠. 다행히 금메달을 따고 좋은 성과를 받게 되어 자신감을 얻었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피겨 연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메이크업, 의상에도 신경 써야 할 텐데, 특히 선수생활 메이크업을 정말 잘하는 걸로 알려졌죠 따로 준비해주시는 분이 있는지?
김: 메이크업이나 의상은 피겨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의상은 제 의견 및 디자이너, 안무가, 코치 모두의 의견을 모아 만듭니다. 많이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시즌 중간에 의상을 바꾸는 선수도 많습니다. 메이크업도 발레나 공연과 비슷하기 때문에 중요하죠. 평소에는 메이크업을 많이 안 합니다. 경기 때는 다르지만요. 어릴 때는 어머니가 해주거나 선생님이 메이크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남자 선생님으로 바뀌고 나서는 제가 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때마다 제 캐릭터에 맞는 화장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 총 11회의 세계신기록! 늘 자기 기록을 본인이 깼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선수로서는 신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11번 기록을 갱신했다는 것도 지금 알았습니다. 점수가 나오는 순간에는 등수가 중요하지 신기록은 많이 체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 기록을 소수점까지 기억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선수로서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윤: 연아 선수의 무덤덤한 모습이 선수로서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연아 선수는 피겨스케이팅뿐만 아니라 피겨 밖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많이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2009년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캠퍼스 생활은 어땠나요?
김: 입학할 때 올림픽과 겹치고 계속 해외에서 훈련하느라 학교를 많이 못나갔습니다. 그래도 공백기가 있을 때에는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하고자 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안 해본 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느꼈고 사소한 것들이라도 얻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재미있게 다녔는데 다시 선수로 복귀를 하게 되어 학교 생활을 많이 못한 것 같습니다.

윤: ‘피겨요정’으로 활약 당시 CF & 예능출연! 기억에 남는 촬영이 있나요?
김: 어릴 때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쑥스러움이 많아요. 광고촬영도 새롭고 안 해본 것이었기 때문에 우물쭈물했는데, 하다 보니 늘게 된 것 같습니다.
윤: 광고에 아무도 표현하지 못하는 표정이 나옵니다. 종종 화보도 등장! 그때마다 카리스마를 쏟아 내며 ‘표정깡패’로 변하는데요.
김: 성격이 여성스럽지 않아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예쁜 척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 표정도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윤: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CF에서 했던 표정 지어주세요
김: (*웃음) 어색했지만 잘 하게 되었네요.

윤: 연아 선수는 현재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나요?
김: 유니세프 국제 친선대사, 동계 유스올림픽 홍보대사,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홍보대사 등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개를 하고 있는지는 숫자를 별로 안 좋아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윤: 지금도 스케이트장 나가나요?
김: 네. 후배 선수들을 제가 은퇴한 이후부터 안무를 많이 봐주고 있습니다.
윤: 지금 훈련장에 가면 마음이 좀 편한가요?
김: 아무래도 그렇죠. 은퇴 전에는 저에게는 일터였으니까요. 그래도 고향 같은 느낌도 나요.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니까요. 지금은 고생하러 가지는 않습니다. (웃음)

윤: 연아 선수는 언제가 제일 힘들었나요?
김: 선수 생활을 17년 넘게 했는데, 모든 선수들,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렇겠지만,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준비하는 기간이 길었고 오랜 기간 연습했기 때문이죠. 부상이나 심적인 슬럼프가 있어서 하루 하루 연습하는 것이 힘들고 지쳤습니다. 오히려 좋은 기억은 순간뿐이었습니다.
윤: 어떻게 이겨내나요?
김: 흘러가게 놔둡니다. 이겨내려고 노력해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릴 때 울기도 많이 하고 화도 냈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면 힘들게 내버려두고. 이제는 괜찮아질 것을 아니까요. 최근에는 그런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윤: 연아 선수가 최고의 위기였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김: 한창 사춘기 때였던 중학생일 당시 많이 힘들었습니다. 부상도 겹쳤고, 성장기이다 보니 몸이 변하고 약해졌습니다. 부상과 스케이트도 안 맞아서 여러 번 바꾸고 브랜드도 바꿔봐야 했습니다. 엄마랑도 계속 붙어있으면서 트러블도 많이 생기고 싸우고 힘들었는데 극복되니까 괜찮아 졌습니다. 그 이후에 큰 부상이 있었을 때 힘들었어요.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골반 근육이 찢어져서 기권을 하고 막연하게 한 달을 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경기를 2주밖에 연습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닌데 경기에 나갔을 때 힘들었습니다. 또 꼽자면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이후에 목표를 이루었다는 데에 허탈감이 컸고, 그 다음 세계선수권 대회를 나가도 동기 부여가 안되니까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스케이트장 가서 안 움직이고, 대회 안 나가겠다고 떼쓰기도 했습니다.

윤: 맞아요. 인생 선배로 이른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룬 연아양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또 도전해야 할 것들이 많을 텐데요?
김: 일단은 제가 피겨 후배들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이 있습니다. 크게는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동계올림픽이다 보니 선수도 부족하고 관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 많은 도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오늘 함께 하는 분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김: 그래서 오늘 제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요, 제게는 의미가 있는 물건을 여러분께 드리려고 합니다. 저처럼 목표를 향해 꿈을 꾸는 분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도전을 의미하는 스케이트화인데요. 직접 신었던 건 아니지만 제가 사인을 해 드리겠습니다.

윤: 김연아 선수의 도전의 상징 피겨스케이트화를 선물로 받으실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사전에 플챌 토크콘서트 앱을 깔고 도전장을 쓴 분들 중 선정하여 드릴 건데요. 어떤 분의 도전장이 선정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과연 그 행운의 주인공은, 제 손에 있는데요 김연아 선수가 신었던 도전의 아이콘을 받을 챌리는? 바로 최민지 님입니다.
챌리: 저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제가 직접 만든 자작곡을 올해 안에 음원 등록하는 것이 제가 결심한 도전입니다.

윤: 김연아 선수가 생각하는 도전은 어떤 건가요?
김: 도전은 시작이 더 두려운 것 같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람 있는 결과를 낼 것입니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집중하고 몰입하면 성공적인 도전을 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 올해 계획은?
김: 은퇴하고 계속 일이 있어서 여행을 많이 못 다녔습니다. 여행도 하고 싶고, 대학원도 잘 다니고 싶습니다. 선수들 가르치는 것도 더 좋은 프로그램 보여드릴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윤: 네, 지금까지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언제 봐도 멋진 김연아 선수!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 또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언제나 끊임없는 도전을 해 나가고 있는 김연아 선수에게 큰 응원의 박수 부탁 합니다.
김: 감사합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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