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대 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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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대 욕설
  • 조원영
  • 승인 2015.04.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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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건                    언론인

세월호 침몰 후 3일째 되던 지난 2014년 4월18일 민간잠수부를 자처한 홍가혜 씨가 MBN-TV와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정부가 민간잠수부들의 구조활동을 막고 있다. 약속한 장비 지원도 없다.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했다”면서 “배 안에 있는 실종자들과 통화를 한 민간잠수부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필자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앞부분은 몰라도 뒷부분은 ‘거짓말’이라고 직감했습니다.

해경이 홍씨의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이 구속기소했으나 지난 1월 1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는 '훈계'를 달아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때 필자는 ‘그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조속한 구조를 바라는 심정에서 한 말이고 완전히 허위 사실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무죄이유를 밝혔습니다. 해경의 구조활동이 지지부진했고, 국민의 안타까움이 정부에 대한 분노로 변해가던 당시 상황에서 홍씨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해경의 명예가 크게 훼손됐다고 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홍씨의 발언 중 세월호 안에 생존자가 있어 통화까지 했다고 한 부분은 그 말을 믿을 사람이건, 믿지 않을 사람이건 모두의 분통을 터뜨리게 했습니다. 누구보다 유가족들의 타는 애를 녹이는 이 소식에 어떤 이는 정부의 무능에 대해서, 다른 이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짓말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191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올리버 홈즈 판사는 언론자유의 기준에 관한 판결을 내리면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깜깜한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것까지 언론자유라고 할 수 없다”는 논지였습니다.

재판부가 홍씨의 발언을 표현의 자유 범주에 포함시켰지만 세월호 사건 초기 세간의 유언비어와, 언론의 선정 보도가 난무하던 상황에서 MBN의 홍씨 인터뷰 보도는 대표적인 오보로 꼽혔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홍씨를 즉각 체포, 기소한 것도 당시의 패닉에 가까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언비어의 확산을 방지할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홍씨의 발언 중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 부분에 대한 신빙성에 의심이 증폭되면서 MBN도 오보를 인정, 사과해야 했고, 그녀는 네티즌들의 신상털기와 악성 댓글의 표적이 됐습니다.

이것이 최근 홍씨를 다시 화제의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세월호 인터뷰 이후 인터넷에 올랐던 자신에 대한 욕설 댓글 작성자 1,000여명을 상대로 무더기 고소한 뒤 변호사를 통해 건당 200만~5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합의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거짓말과 욕설의 대결'인 이 사건의 피고소인들 중에는 미성년 학생들도 있고, 자녀의 장래에 지장이 될까봐 합의에 응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합니다. 홍씨의 고소는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고, 개인에 대한 다중의 언어폭력에 대한 손해배상 창구라는 점에서 사회정의에도 맞습니다. 그러나 욕먹을 행위를 해놓고 욕을 한 사람들을 무더기 고소해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이 인터넷 시대의 신종 비즈니스가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습니다.

인터넷 상의 댓글 문화는 거짓말과 욕설의 경연장이 된지 오래고, 이미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이념 지역 세대 빈부 등 우리 사회의 갈등요인에 관한 담론일 경우 댓글공간은 욕설로 도배질됩니다.

우리 사회에 욕설이 넘쳐나게 된 원인은 욕설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탓도 크다고 봅니다. 권력자를 욕하려면 옆자리부터 살펴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초등학생조차 인터넷에서 대통령을 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것이 민주화나 언론자유로 오인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단속키로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도 처벌해주오’라며 욕설 대열에 동참할지도 모릅니다. 처벌하기에는 대상자가 너무 많아 속수무책인 상황이 인터넷 공간에서 죄의식도 없이 함부로 욕설을 내뱉는 토양이 되고 있는 겁니다.

그점에서 홍씨의 고소에 긍적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대상자가 많더라도 고소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 것입니다. 또 인터넷 상에는 익명으로 표시되지만 법적 문제가 되면 실명이 확인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다중처벌불능에 기댄 부화뇌동형 욕설 댓글을 자제케 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면도 있어 보입니다. 유사 소송이 남발될 우려입니다. 한때 저작권법 위반을 둘러싸고 그런 남소(濫訴)현상이 지적된 적도 있습니다. 거짓말이 표현의 자유라면 욕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로 돈벌이를 하는 것이 나쁜 것과 마찬가지로 욕설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도 나쁩니다.

거짓말과 욕설의 인과관계로 따지더라도 사회적 해악이 되는 거짓말에 법이 좀 더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홍씨에 대한 무죄판결이 그녀의 무더기 제소를 부추기지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대책은 무엇일까요? 포털과 언론사가 인터넷 콘텐츠 관리를 강화해야 합니다. 언론자유 또는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의 뒤에 숨어서 욕설 댓글을 방치할 게 아니라 욕설의 정도, 상습성 등을 기준으로 악성댓글을 차단하는 기술적인 방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포털로선 댓글의 동시다발성으로 인해 즉시적 관리가 어렵다면 시차적 관리라도 해야 합니다. 익명이 실명보다 6배나 공격성을 띤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실명 댓글을 유도하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 측도 욕설배상 소송의 남발을 막기 위해 기소 단계에서 내용, 상습성, 성년여부 등을 살펴 교도 등을 조건부로 고소대상자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짓말과 욕설은 머리가 둘 달린 인터넷 시대의 괴물, 딜레마입니다. 홍가혜 사건이 바로 딜레마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댓글문화의 정화에 기여가 된다면 이 사건으로 울화통 터뜨려야 했던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보상은 되겠습니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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