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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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정치학
  • 조원영
  • 승인 2015.04.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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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경                 신산업경영원장

로마시대 웅변가 키케로는 말 한 마디로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 많은 장군 · 집정자들이 그의 세 치 혀를 당해 내지 못해 사라지곤 했다. 그러한 그도 끝내 안토니우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말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구한말 김옥균도 스스로 언변에 자신을 가졌다. 그는 『내게 5분만 시간을 준다면 어떤 사람이든 설득시킬 수 있다』고 자부했으나, 그를 쫒고 있는 자객 홍종우를 자기 사람으로 알고 중국 상해까지 함께 갔다가 결국 살해되었다.

이처럼 달변가들에게도 함정이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온통 말잔치뿐이다. 두뇌도 없고 가슴도 없는 해파리처럼 둥 둥 떠다니며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늘어 놓기에 바쁘다.

지난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선택적 복지를 강조하는 홍준표 경남도 지사를 찾아 가 대화하는 장면이 TV 뉴스에 비춰졌다.

홍 지사는 그 나름대로 중앙 정부의 보편 복지에 반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같은 경남 지사를 찾은 문 대표는 한 술 더 떠서 학생들의 교복도 무상으로 공급해 주자고 주장했으니 장군멍군에 지나지 않는 행태다.

약 40분 간 마주 앉아 자기 소리만 한 이들은 끝나고 일어서면서 또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매우 유쾌한 표정들이었다. 「본인 사망 외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뉴스가 되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는 정치인들 행각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더구나 문 씨는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 회동을 하고 며칠 안 됐으므로 연일 대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이렇게만 2년이고 3년이고 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가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는 것은 이같은 말장난 정치 때문이다. 도대체 진정성이 없다.

그런데 행정부도 이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정부의 각종 정책 발표 자료를 보면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채 미사여구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창조경제 육성책도 그렇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는데, 꼭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으며, 어제와 오늘의 혁신센터 특징도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저 그럴 듯한 소리로 포장됐으나 미래를 창조하는 무슨 기술이 어떻게 개발될 것인 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더구나 17개 센터를 설치한다며 매달 대통령이 해외 출장 갈 경우엔 달을 걸러서라도 꼭 대통령 앞에서 빈 소리를 나열한 다음 테입 커팅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인가.

달을 거르지 않고 진행하더라도 1년 반이 걸린다. 모든 계획은 붐이 조성돼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잊어버릴 때쯤이면 하나씩 터뜨리는 것은 정치적 쇼처럼 보여 딱하다.

그리고 해당 부처 공무원들도 의지와 구체성이 없는 정책을 화려하고 미끈하게 꾸리려는 경향이 없는 지 반성해야 한다.
지나 온 시대 압축 성장을 반성할 점도 있지만, 지금 이만한 경제 성장과 산업·기술 발전을 이룩한 것은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 접어 들어 세계가 온통 눈을 밝히고 혁신경쟁을 벌이고 있는 때에 그럴 듯한 행사를 벌이고 말장난이나 한다면 낙오를 면하기 어렵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 혁신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미국에서 벤처로 성공하여 오랜 동안 세계 최대급 연구소 사장을 맡아 온 김종훈 박사를 초대 주무 장관으로 영입하려 한 것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만한 인재를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면서 영구 귀국토록 하려면 응당한 사전 정치 작업이 필요했다.

최근의 정치 풍토를 고려해 먼저 야당을 설득 동의를 얻어 놓아야 했다. 이 같은 필수 과정을 생략한 채 온갖 오해를 뒤집어 씌웠으니 쓸만한 사람이 자기 나라를 위해 헌신하려고 할 것인가. 이는 김정훈 박사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나라 안팎에서 유용한 인재들이 공직에 나서기를 꺼린다면 국가의 장래를 우려치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리더는 훌륭한 인재 확보를 위해 삼고초려하는 성의가 있어야 하고, 그 성의는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만 「말의 정치」가 종식될 것이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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