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영 사장, “고객이 짜다고 하면 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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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영 사장, “고객이 짜다고 하면 짠 것이다”
  • 녹색경제
  • 승인 2011.04.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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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의 달인 권오용 SK그룹 PR어드바이저 사장이 외교통상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정부 관리를 상대로 한 강연이라 조심스러운 면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권 사장은 이말 저말 할 말은 다 했다.

권 사장이 외교부 직원들에게 한 가장 아픈 말은 “외교부는 억울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외교부는 최근 고위층 자녀에 대한 특채시비, 상해 영사관의 예쁜 여자 파동,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FTA)문 번역 오류 등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외교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일들이 연속으로 터졌기 때문이다. 이런 잘 못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비판받더라도 억울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든 집단, 조직이든 자기가 잘 못한 것을 알면서도 비판받으면 억울해 하고, 섭섭해 하는 습성이 있다. 또 잘 못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외교부 직원들은 이런 분위기에 휩싸이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권 사장은 또 훈수를 했다. 국민들과 논쟁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채 시비나 여자파동, 번역 오류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지만 어쩌구 저쩌구 하지 말고 반성하라는 뜻이다. 잘 못을 잘 못으로 인정하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권오용 사장
그는 이어 “기업에서는 고객이 짜다고 하면 짠 것이다.”는 뼈아픈 말을 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고객이고, 고객의 입맛에 맞춰 물건을 만들든지 장사를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논리는 외교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권 사장의 생각이다. 정부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일한다.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싫다면 싫은 것이다. 국민들이 잘 못했다고 하면 잘못한 것이라는 말이다. 공무원들은 머릿속에 국민들을 품고 다니며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권 사장의 특강은 15일 세종로 외교부 상황실에서 있었다. 엘리트의식이 강한 외교부 직원들은 권 사장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권 사장은 쓴 소리를 해댔다. 무든 일이 있으면 외교부에 와서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기업의 CEO가 외교부에 대해 할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은 의외였다.

권 사장은 한-EU FTA 번역 오류를 꼬집었다. 꼬집은 게 아니라 송곳으로 콕콕 찔렀다고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권 사장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예로 들었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300쪽 짜리 소설을 영어로 옮기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고, 혼이 들어갔다.

그런데 외교부의 한-EU FTA는 1000쪽이 넘는데 이를 두 달 만에 옮긴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번역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표현을 달리 하며 쉽게 번역할 수도 있는데 1년을 투자했다. 외교문서는 단어 하나, 점 하나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진다. 그만큼 세심한 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뚝딱 해치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권 사장은 생각의 전환도 주문했다. 남산터널과 혼잡통행료를 예로 들었다. 권 사장은 “남산 터널을 이용해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면 교통 혼잡을 덜어주는 것인데 혼잡통행료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거둔다.”고 꼬집었다.

어떻게든 세금을 거둬들이려는 서울시에서 보면 차를 끌고 도심으로 들어오든 나가든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은 무조건 혼잡 통행료라는 이름을 붙여 세금을 거두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권 사장은 생각이 달랐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몰라도 밖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왜 돈을 받느냐는 것이다. 생각의 전환, 적절한 언어적 표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권 사장은 문화 외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SK가 10년 동안 중국에서 장학퀴즈를 통해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며 우리 외교도 세일즈 외교, 비즈니스 외교 보다 품격을 높여 가치외교를 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치외교는 장삿속 외교에 문화외교가 더해진 것이다.

그는 외교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문제도 놓치지 않았다. 외교부 차원에서 공식 채널을 통한 홍보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직원들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를 통해 정책이나 하는 일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직원들이 외교부에 대해 사랑을 갖고, 국민 속으로 파고들라는 것이다.

권 사장은 외교부는 현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창조하면서 진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말은 늘 하는 대로 틀에 박힌 일을 하고, 욕을 먹으면 먹는 대로, 칭찬을 받으면 받는 대로 그냥 그렇게 지낼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짜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권 사장은 문화에 대한 의견도 냈다. 우리나라를 홍보하기 위해 해외 공관을 전통 한옥으로 짓는 문제, 대통령의 의전용 의상을 한복으로 하는 문제도 검토해볼 일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쉬지만 우리나라 홍보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기업의 CEO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 일은 자주 있다. 하지만 권 사장처럼 뼈 있는 말, 콕 콕 쑤시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기업과 정부 관료 사이가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을 틀어 쥐려하고, 기업은 정부의 규제를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권 사장의 특강을 들은 한 직원은 “권 사장에 대해 평소 잘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톤으로,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며 “강연을 듣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정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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