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과 ‘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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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과 ‘俗’
  • 편집부
  • 승인 2014.09.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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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경 신산업경영원장

지난달 한때 한반도 하늘은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찼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방한하여 4박5일 동안 시간을 쪼개며 서울 대전 해미 음성 등지를 누비며「화해, 평화, 희망」을 강조하면서 특유의 헌신과 사랑을 전파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등 상처받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교회 간부들에겐 청빈(淸貧) 정신을 강조하며 거듭 낮은 곳으로 임하기를 당부했다. 또한 남북이 분단되고 극도로 증오가 교차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여 용서와 평화를 화두로 제시했다.

불과 100시간 안짝이었는데,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교황의 진면목에 감동했다.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여의도 사람들도 이 기간엔 조용했고, 너 나 할 것 없이 교황의 대덕(大德)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이었다. 교황이 떠나자 곧바로 세월호 특별법 2차협상을 한다며 다시 만나더니 또 틀어지고 난장판이 계속됐다.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여당 측과 담판하여 어렵사리 도출한 합의안을 새정치민주연합 중진들이 반대하고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신들이 특별검사를 지명하고 수사, 기소권도 진상조사위원회가 가져야 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는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 인근 주민센터 앞에서 연일 농성을 벌이며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이건 무법천지다. 한 나라의 질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뜻하지 않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라곤 하지만 밖으로 주장하고 행동할 때엔 합법성(合法性)을 고려해야 한다. 법에 없는 제도를 강요한다면 어떻게 전 국민의 보편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더하여 불과 2년 전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떨어진 문재인 의원이 유가족 단식 농성에 참여하고, 자칭 사회 지도인사들의 중재를 핑계한 개입까지 시도되고 있으니 이 나라가 과연 법치국가(法治國家)인 지 의심스럽다.

이 같은 행태는 월남 패망 직전 사회상과 너무도 흡사하여 그 의도가 어디 있는 지를 반문치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나라에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이 청빈하고 겸허한 종교인이 있는지 모르겠으며, 또 있다손 치더라도 함부로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교황 방한에 앞서 천주교를 비롯 국내 종교 단체 지도자들이 내란음모 혐의로 고등법원 재판을 받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처사도 잘 못 된 일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이석기 씨는 1심보다 형량이 감축됐다.

종교인은 오로지 교회 안에서 신도들을 향한 강론을 통해서만 의견을 내야하며, 그 의견을 타인이 부정하더라도 탓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교황도 타인의 종교를 강요하지 말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는가. 하물며 국법(國法)을 어기라고 주장할 자격은 없다.

종교의 세속화는 세월호 사건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종교 간판을 걸어 놓고 한 편으로는 엉터리 상행위(기업 활동)를 하며 온갖 비리를 저지른 끝에 곪아 터진 것이 세월호 참사였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장사하는 교회, 정치하는 종교인들은 사회로부터 존중받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하여 역대 바티칸 교황들이 종교의 본령(本領)을 지키며 오로지 사랑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있음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종교는 종교의 영역이 있다. 그 범위를 벗어나 온갖 세속 장난꾼들의 노름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려면 아예 법복(法服)을 벗고 환속(還俗)하는 게 옳다.

속세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법복을 입고 종교인 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이것은 필자의 생각만이 아니다. 사제(司祭) 생활을 하다 환속한 어느 친구의 말이다.

성령(聖靈)의 세계와 범속(凡俗)의 세계는 따로 구분돼 있다. 그만큼 자기 길을 지키며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귀와 눈이 있고 가슴이 있는 중생(衆生)들을 널리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참종교인이라 하겠다.

 

편집부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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