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때문에 기죽은 놈에게 돈까지 내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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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때문에 기죽은 놈에게 돈까지 내라고 하니...
  • 녹색경제
  • 승인 2011.04.0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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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는 우리나라의 수재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카이스트에 가려고 애를 쓴다. 카이스트에 다닌다고 하면 본인도 자랑하고, 부모는 더 자랑한다. 고등학교는 학생을 카이스트에 보내면 교문 앞 네거리에 현수막을 걸어 자랑하고, 축하한다.

그런 카이스트에서 학생이 4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공부 스트레스와 경쟁에 대한 압박감, 성적부진에 따른 징벌적 수업료다. 꿈에 부풀어 교정을 뛰어다녀야 할 학생들이 고민하다 저세상 학생이 된 것은 학생들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어른들, 특히 대학당국의 잘못 때문이다.

 
학생들이 얼마나 힘든지 보자. 카이스트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모두가 장학생이다. 그런데 학점이 부진하면 일년에 최고 800여만원의 돈을 내야 한다. 물론 학생에 따라, 학점에 따라 내는 수업료는 달라진다. 학생들에게 분발을 촉구하기 위한 조치지만 결국은 성적이 나쁘니 돈으로 때우라는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는 학점이 짜기로 유명하다. 학점이 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학사관리가 엄격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늘 학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는 징벌적 수업료다. 학점이 낮아 고민하는 학생에게 수백만원의 벌칙성 수업료를 내라고 하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내성적인 학생은 머리가 터질 것이다.

자살한 학생들은 바로 이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다. 자살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학생이 교정에 대자보를 붙였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대자보는 학생들이 경쟁에 지쳐있고, 학교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학교가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재미있고, 기쁨이 넘쳐야 하는 데 그렇질 못했다는 것이다.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은 학생들이 4명이 죽기까지 다른 생각을 했다. 강한 학생, 공부하는 학생을 만들기 위해 징벌적 수업료도 내게 하고, 1학년부터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도록 했다. 서 총장의 의도는 좋았다.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심어주기 위해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앞서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이 자살했을 때 이를 간과한 것은 큰 실수였다. 처음에 학생이 자살했을 때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그냥 방관하고 말았다. 결국 하나 죽고, 둘 죽고, 셋 죽고, 넷이 죽고 나서야 징벌적 수업료을 없애고, 영어 수업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꼭 지나간 버스를 보고 태워달라고 손드는 것과 같지 않은가?

서 총장이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학사 관리는 엄격하게 하고, 징벌적 수업료를 내게 했을 때는 언론도 그를 위대한 총장으로 여겼다. 일부 신문은 서 총장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서 총장이 있어야 대학 교육이 제대로 되는 것같이 요란을 떨었다.

하지만 서 총장의 대학경영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학생들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총장의 생각이 아무리 좋고, 개혁적이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적이 나쁜 학생에게 수업료를 내게 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생각은 그럴듯하다. 수업료 내기 싫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할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면 그렇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성적이 떨어져 기가 죽고, 열 받은 놈들에게 수백만원의 벌칙성 수업료로 내라고 하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을까? 답은 뻔하다.

어째든 서 총장의 모험은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났다. 서 총장이 늦게나마 이를 알아차리고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니 다행은 다행이다. 지금부터는 학생들에게 지나친 경쟁이나 학점을 강요하기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꿈을 주고, 비전을 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사랑이 특히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더 예민하고, 작은 일에도 마음의 상처를 더 많이 받고, 더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나 행동도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서 총장은 알았으면 좋겠다. 교수들도 이런 사실을 기억하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우린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많이 본다. 옷도 수수하게 입고, 덜렁덜렁 편하게 사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또 누가 뭐라고 해도 마음의 상처를 잘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깔끔하고, 자아가 강하고, 남을 의식하는 사람을 어려움을 잘 이기지 못한다. 또 작은 말만 들어도 상처를 받는다. 서 총장은 이런 평범한 삶속의 원리를 교육에 적용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을 키우고 살리는 곳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대학 당국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명도 아니고 4명이나 같은 이유로 죽는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절대로 아니다. 서 총장은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선택을 해야 한다. 학생들을 4명이나 자살로 몰아간 것에 대해 회개하고, 자복하고, 눈물을 흘리고, ‘내가 총장 자격이 있나?’ 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 다음에 ‘총장을 계속해야 하나?’ 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정우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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