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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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의 운명
  • 편집부
  • 승인 2014.05.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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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언론인

 
부산 시청에서 25㎞ 떨어진 부산시 기장군 고리(古里)는 1970년까지만 해도 아무도 모르는 조그만 갯마을이었습니다. 8년의 공사 끝에 1978년 첫 상업용 원자로 고리 1호기가 가동하면서 고리는 한국 원자력 에너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국민 대부분이 원자력 국가로 첫 발을 내디딘 한국의 위상에 긍지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원자력하면 강대국을 연상했고, 원전은 미국, 소련,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소수 기술 선진국만이 갖고 있는 기술집약적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리 1호기가 다시 논란의 초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고장과 오작동이 잦아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증폭시켜 오다가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안전 문제가 최대의 사회적 현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이 30년, 즉 2007년까지였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08년 10년의 가동 연장을 승인했습니다. 설계수명이란 원자로를 건설할 당시 그 원자로에 부여된 운영 연한을 말합니다.

설계수명이 됐더라도 기술적 평가를 통해 안전하게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가동을 연장할 수 있으며, 원자력 선진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검증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원자력의 안전문제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가동연장 승인이 제대로 된 평가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수명연장 승인이 있은 후 국민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 후크시마 원전 폭발사고의 충격이 일파만파로 세계를 진동시켰고, 원자력 마피아로 불리던 정부, 학계, 업계의 3각 유착관계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관련기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2012년 고리 1호기는 직원이 발전기 오작동으로 12분간 정전되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고, 작년 말에는 터빈계통에 문제가 생겨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여기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으로 시민들은 정부가 운용해온 모든 안전관련 시설과 시스템에 대해 신뢰를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핵단체는 물론이고 환경단체, 시민사회단체가 고리1호기 폐로(廢爐)를 주장하고 나섭니다. 고리 1호기 이슈는 곧 6.4지방 선거의 부산 울산 지역 선거 쟁점이 되었습니다.

고리 원전과 가까운 대도시 부산과 울산 시장 후보와 기장군수 후보들은 선거공약으로 고리 1호기 폐로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당장 폐쇄해야 한다는 급진적 공약도 있지만 1차 수명 연장이 만료되는 2017년 폐로하겠다는 게 최대공약수입니다.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서 고리 주변 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국제신문, 부산KBS, 신라대부산학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5월 초에 부산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시민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6.4%가 고리원전을 폐쇄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환경세 방식으로 부담하겠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부담액을 질문한 결과 월 평균 7,727원을 부담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리 원전에 대한 안전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50%가 “위험하다”고 대답했고, “안전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16.4%에 그쳤습니다. 고리 원전에서 대형 참사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사람은 49.1%였고, “낮다”고 응답한 사람은 18.5%였습니다. 정부의 원전 확대정책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45.2%, 찬성한다는 응답이 25.9%였습니다.

원자력 안전 문제야말로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반 시민은 정부 관련기관의 안전진단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판단으로는 일어날 수 없었던 사고가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이고,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될 일이면서도 일어난 것이 세월호 참사이니 최악의 상황이 시민의식을 점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리 원전에서 후쿠시마 규모의 재앙이 일어날 경우 대피해야 하는 인구는 350만 명이라고 시민단체는 말합니다.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즉각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30.7%, 2017년까지만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31%, 전문가의 결정에 따른다가 31.2%로 나타났습니다.

시민들은 전문가의 결정에 따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의 합의점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1호기 가동은 2017년에 끝내고 폐로(廢爐)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애초에 2017년에 가서 적당히 수명연장을 해보자는 심산이었다면 그건 오판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고리 1호기를 폐쇄하면 그 순간 가장 간명한 해결책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월성 1호기가 곧 설계수명이 끝나며 23개 원자로가 줄줄이 설계수명이 만료되면서 수명연장이 핫이슈가 될 것입니다. 노후 원자력 폐쇄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것입니다.

폐로된 원자로를 처리하는 데 기간은 얼마나 걸리며 돈은 얼마나 드는지 방사능 관리는 얼마나 오래 해야 안전한지 아무도 선명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은 ‘화장실 없는 궁전’에 비유됩니다. 결국 화장실 없는 궁전은 오물이 넘쳐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문제는 생겨날 것입니다. 역대 정부의 에너지 기본계획을 보면 공급위주의 정책이었지 수요관리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10여개의 원자로를 더 건설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기존의 공급정책을 밀고 나간다면 한쪽에서는 원자로를 헐고, 다른 한쪽에서는 허는 숫자보다 더 많은 원자로를 지어야 합니다.

지금은 국민적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문제는 너무도 복잡합니다. 원전을 없애고 대신 석탄이나 석유발전소로 보충하려 한다면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이산화탄소가 급격히 늘어날 것입니다. 화석연료의 부존자원도 계속 줄어듭니다.

국토는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에게 재생에너지 이용은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제한적입니다. 모든 에너지원의 배합(Mix)과 기술발전과 수요는 물론 사회정치적 요소까지 감안한 종합적인 평가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안 하나하나에 그때그때 원칙도 없이 대응하는 방법으로는 이제 한계가 왔습니다. 고리 1호기 폐로 논쟁이 한국의 에너지문제 해결의 통합적 이정표가 될 것인지 기대해 봅니다.

편집부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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