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제이미 올리버의 실패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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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eets DESIGN] 제이미 올리버의 실패가 남긴 교훈
  • 박진아 IT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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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계도 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

2019년 5월 21일, 영국 출신의 TV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는 지난 근 20년 동안 영국 안팎 대도시에서 운영해오던 레스토랑 체인 25곳에 대한 법정관리 처분을 받았다. 제이미 올리버 레스토랑 그룹은 런던 제이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두 곳과 개트윅 공항 지점 한 곳을 포함한 3곳을 제외한 4개 레스토랑 브랜드 지점 22곳이 폐점되고 피고용자 1쳔 3백 명이 해고처리된다.

제이미 올리버가 소유 운영해온 레스토랑 브랜드. Courtesy: Jamie Oliver homepage

한국에 백종원이 있다면, 영국에서는 제이미 올리버가 있다. 제이미가 TV 스타셰프로 데뷔할 당시인 20년 전 만해도 서구 사회에서도 요리란 가족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가정주부나 고든 램지(Gordon Ramsay)나 헤스튼 블루멘탈(Heston Blumenthal) 같은 미슐렝급 고급 레스토랑 셰프들만의 전용구장이었다.

가수 로비 윌리엄스와 축구선수 데이빗 베컴과 더불어 현대 영국의 대중문화 3대 아이콘의 한 사람으로 꼽혀오던 제이미는 요리란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중문화의 일부이자 즐거운 취미활동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스무살 중반의 팔팔한 젊음과 에너지를 내세운 제이미는 남자도 부엌에서 맛있고 보기좋은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친구를 즐겁게 해줄수 있다며 21세기 신 현대 남성상을 제시했다.

템즈 강 근처 리버 카페라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던 제이미는 어느날 BBC에서 나온 한 프로듀서의 눈에 띄며 1999년부터 <네이키드 셰프(The Naked Chef)>라는 TV 요리 프로그램 쇼 호스트로 발탁됐다.

펭귄출판사에서 출간된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레시피 책들. Courtesy: Jamie Oliver@Instagram

영국 시청자들은 제이미의 챠밍한 외모와 친근한 캐릭터에 곧 반했다. 그의 인기는 단숨에 치솟았고, TV요리 쇼와 동일한 제목으로 낸 그의 첫 요리책은 내는대로 영국 서점가를 휩쓸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경제 호황 분위기와 분방한 소비성향이 만연하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엽 당시, 제이미는 아내의 생일 날 럭셔리 스포츠카를 선물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줘가며 열정을 쫏아 열심히 일하고 소비하며 인생을 만끽하라는 신자유주의 메시지를 전파하기도 했다.

‘뉴레이버(New Labour)’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 정책 비젼을 알리는데 제이미는 안성맞춤격 롤모델이었다 [*사회주의에 기반한 사회보장체제에 자본주의적 인센티브를 겸비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치경제 정책]. 블레어 총리는 음식 맛 없기로 유명한 영국에 새 요리와 음식문화를 선도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3년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사실 제이미는 썩 괜찮은 요리 스승이었다. 20년 전 요리 문외한이던 필자도 BBC 방영 『네이키드 셰프』 요리쇼를 시청하며 신선장터에서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루고 익혀서 접시에 근사하게 담아내는 법을 배웠다. 제이미는 대중에게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초를 심어줬다. 그가 세운 요리학교는 빈곤층 청년들에게 희망과 일자리를 줬고,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요리란 해볼만한 창조직이라는 영감을 전파했다.

제이미는 그렇게 구축한 '제이미 올리버' 브랜드를 레버리징해 2008년부터 레스토랑 체인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하지만 지난 10년에 동안 그의 레스토랑 사업은 매년 매출하락을 거듭했다. 2015년, 제이미는 투자 실패로 주식가치 40%를 잃었고, 2017년엔 레스토랑 프랜차이스 사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사재 1,650만 달러를 수혈해 가까스로 도산을 모면했다. 

제이미는 올초 저서 저작권과 ‘제이미 올리버’ 브랜드 주방용품 라이센싱에서 얻은 수익 4백 만 파운드(우리돈 약 60억 원)를 추가로 수혈했지만 재무단은 결국 미래 수익성이 불투명하다 결론내렸다. 제이미 올리버가 소유하고 있는 제이미 올리버 미디어와 4개 레스토랑 브랜드에 대한 법정관리 대행은 글로벌 회계법인 KPMG가 담당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을 즐기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과 휴식 시간 구분없이 식사한다.  Courtesy: UberEats

제이미가 요리책과 TV요리쇼 스타로 처음 부상했던 20년 전에 비하면 요즘 현대인들의 입맛과 식생활 문화는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 영국 곳곳의 장터와 거리에는 다양하고 특화된 팝업 레스토랑, 길거리 노점과 푸드트럭, 카페 수가 급증했다. 주변 거리와 장터에 어디를 둘러보나 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매력적이고 다양한 선택 대안들로 넘쳐난다.

일에 지치고 시간에 쫏기는 현대인들의 평균 매식 및 외식율은 과거 그 어느때 보다 높아졌다. 특히 시간에 쫏기지만 소비성향은 왕성한 요즘 밀레니얼 세대 젊은 소비자들은 정해진 시간과 끼니 때마다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지 않는다. 간편히 포장된 한끼식사를 사들고(grab ’n go) 거리를 걸으면서, 오피스 책상에 앉아서, 또는 퇴근 후 집으로 가져온 포장식이나 집으로 배달시킨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또 레스토랑 같은 북적대고 사교적인 공간 보다 자기집의 프라이버시를 선호한다.

TV에 요리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소비자들은 요리를 덜 한다고 한다. 그 대신 수퍼마켓 간편포장식과 음식배달을 포함한 매식율은 증가한다.  © Michael Franke Courtesy: Deliveroo.

제이미의 레스토랑 체인들은 양심적인 공급원에서 받아온 ‘좋은 식재료’를 ‘건강하게 조리’하여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20년 전 ‘레스토랑’ 컨셉 그대로 운영된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급변했을 뿐 아니라, 제이미의 레스토랑이 제공하는 수준의 요리를 할 줄 하는 아마츄어 요리사[필자 포함] 인구도 부지기수로 많아졌다(이 트렌드는 유튜브에 넘쳐나는 요리쇼만 봐도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지가와 식당 임대료, 식자재 가격, 고용비의 꾸준한 인상으로 레스토랑 운영에 소요되는 제 비용(overhead)도 계속 상승했다.

미디어 스타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가가 된 제이미는 어쩌면 제이미 올리버 브랜드의 ‘쿨’함에 지나치게 의존했는지도 모른다. 또 소비자 라이프스타일과 입맛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20년 전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적기에 경영 혁신을 단행하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고 요식업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델리버루 에디션스 프로그램은 기존 브랜드 지명도 있는 레스토랑들에 배달만을 담당하는 '키친온리(kitchin-only)' 주방 또는 ‘다크키친(dark kitchen)’ 시설을 제공한다. 레스토랑 업주는 조리와 배달에만 주력해 비싼 레스토랑 임대료, 관리비, 인건비 등 제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 Michael Franke Courtesy: Deliveroo.

세상에 영원히 무력적인 브랜드나 기업은 없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 인터넷 모바일 기술을 원동력으로 한 테크는 비즈니스계에 혼란을 일으키고(disrupt) 기존 사업모형과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 델리버루(Deliveroo) 같은 음식배달업이 최근 영국 요식업계를 잠식해 나가고 있는 현상은 이같은 새 음식문화를 대변한다. 현실 직사와 혁신이 따르지 않는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 앞에는 제이미 올리버의 전철이 펼쳐져 있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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